• 최종편집 2023-08-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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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산업경제뉴스 DB]

 

빛과 어두움에는 경계선이 있다. 분별없이 지나친 신앙의 행위가 때로는 성경의 진리를 벗어난 종교적, 미신적, 주술적 행위가 될 수 있음을 알고 경계해야만 한다. 

 

인간의 속성 가운데에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 대신 보이는 것을 의지하려는 금송아지 우상이 있기 때문이다. 뱀의 유혹은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과도 따먹고 싶어한 인간의 자유의지를 타고 들어온 것이다.

 

그러므로 예언적 행동이 주는 성경적, 영적 의미를 인간의 욕구를 충족하는 도구로 사용하려고 하는 유혹을 이기지 못할 때에 그것이 주술적 행위로 변질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그러한 것을 요구하는 사람들이나 그것을 보여 줌으로 사람들을 끌려고 하는 사역자들 모두에게서 발견된다.

 

‘예언적 행동(Prophetic Action)’이란 하나님께서 어떤 행하실 일이나 앞으로 일어날 일을 미리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예언적 행동을 또 다른 말로 ‘상징적 행동’(Simbolic Action)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주로 구약의 예언서에 나타난 이러한 예언적, 상징적 행동들은 선지자들이 선포하는 말을 눈으로 볼 수 있는 행동으로 미래에 이루실 하나님의 의도와 행위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고, 또한 자신들이 선포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확실히 하는 기능을 가졌다.

 

“상징 행동의 목적과 특징은 


1.현재의 삶에서 앞으로 일어날 사건을 선취하여 선포하는 것이다. 즉, 미래 사건의 선취모사이다. 

 

2.상징 행동은 그 행동 자체보다 그 행동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가 더 중요하다. 

 

3.상징 행동은 그것이 갖고 있는 의미가 중요하지, 그 자체 안에 어떤 힘이 내재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행동으로 묘사된 미래를 실제화 할 수 있는 힘이 그 자체 안에 있지 않으며,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에 있는 것이다. 

 

4.상징 행동은  하나님의 행동을 소개하고 표현해 줌으로 예언자의 메시지를 강화시켜 주는 것이 주 목적이다”(예례미야의 상징행동들, 차준희).

 

이에 대한 수많은 예들이 있지만 대표적인 것을 든다면, 

 

첫째, 출애굽시의 열가지 재앙 중 마지막 재앙인 장자의 죽음 재앙을 앞두고 하나님께서 히브리 가정마다 가족의 수를 따라 어린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게 한 행동이 있다(출 12장). 

 

이는 앞으로 행해질 동물제사를 통해 백성들의 죄를 사하는 피의 제사를 예견한 동시에, 어린 양이신 예수님의 피로 인류의 죄를 사하고 죄의 결과인 사망이 넘어 갈 것(Pass-over)을 보여 준 예언적 행동이었던 것이다. 

 

둘째, 에스겔서 4:1-3에 보면 예례미야의 예언적 행동이 나오는데 하나님께서 그에게 토판(박석)을 갖다 앞에 놓고 예루살렘을 그린 후에 그 성읍을 에워싸고 사다리를 세우라고 하셨다. 

 

그리고 흙으로 언덕을 쌓고 그것을 행하여 진을 치고 그것을 향하여 공성퇴를 둘러 세우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앞으로 예루살렘이 공격당할 것을 보여준 예언적 그림이었던 것이다. 

 

이는 실제로 B.C 586년에 있을 바벨론의 공격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유다 왕국이 망할 것을 보여준 예언적 행동이었다 .   

 

이에 반해 주술적인 행위, 마술적 행동은 어떤 의도대로  이끌어가는 그 자체의 힘에 중점을 둔다. 

 

자체적인 힘으로 미래적인 사건을 불러오는 미신적 행위는 모두가 악한 영의 영향 안으로 이끌어가는 파괴적인 결과가 있음을 알아야만 한다. 

 

첫째는 주문을 외워 심리적으로 어떤 일어날 것을 기대하게 하는 것과, 둘째는 실제적으로 사람들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마귀의 힘을 빌어 어떤 일을 초자연적으로 성사시키려는 행위이다.


 

지금도 시골에 가면 처마 밑에 생선뼈를 걸어 놓아 악귀의 근접을 막는다던가, 부적을 사용하여 장차 일어날 지도 모르는 재앙을 미리 방지해 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또 나일 강변의 들에서 발견된 나무상자를 보면 그 안에 돌로 만들어진 사람 인형이 가득차 있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고 한다. 조그만 나무상자 안에 사람 인형을 가득 채움으로써 농사철에 인력의 부족함을 미연에 방지하려고 한 것이다.

 

이 글을 쓰는 목적은 오늘날 은사주의자들 그룹에서 행해지는 예언적 행동 가운데 다분히 주술적인 행위들이 있음을 분별하고, 그러한 미신적인 행위에 참여하지 말아야 함을 알리고자 하는 것이다.

 

오래 전에 한 여목사님이 한국에서 하는 집회에 참석하여 땅밟기를 배우고 모형 십자가를 집안의 곳곳에 꽂는 일을 하는 한 은퇴한 목사님께 어디서 배웠느냐 묻고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한 적이 있다. 

 

이 목사님이 우리 집회에 참석하고 난 후, 교회에 등록해 같이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그 때부터 교회 화분에 조그마한 모형 나무 십자가들이 꽂혀 있는 것이었다. 

 

이상해서 물었더니 땅밟기(정복) 개념으로 교회 안에 악한 영의 역사를 물리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당장 치우고 다시는 그런 일을 하지 말라고 한 적이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 교회 한 교인이 이사를 가 담임목사인 나도 아직 심방을 가지 않았을 때인데, 이 목사님이 새 집에 이사가면 십자가를 꽂아야 한다고 말을 해 순진한 교인이 그 목사님을 모시고 십자가를 꽂고 기도했다는 것이다. 

 

이는 100% 주술적 행위요, 미신적 행동인 것이다. 수년 째 집회를 하고 있었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교회에 새삼스레 나무 십자가를 꼽고, 이사 간 집에 귀신의 역사를 물리친다고 나무 십자가를 집안 곳곳에 꽂고 다니는 것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나 절에 다니는 사람들이 부적을 갖다 붙이는 것과 다름이 없는 주술적 행위인 것을 왜 모르는지? 

 

그것을 사역이라고 가르치는 사역자나 배워 그대로 따라하는 목사는 제 정신인지 이해가 안가는 것이다. 

 

심지어는 죄의 목록이나 기도제목을 쓴 종이를 화분에 묻고 그 위에 나무 십자가를 꽂기도 한다고 한다. 

 

성황당에 리본을 달아 소원을 비는 것이나 사람의 몸에 부적을 갖고 다니면 액땜을 한다는 것과 다름없는 하나님이 증오하시는 주술적 행위요, 점치는 것과 같은 행위인 것이다.

 

그리고 기름을 집의 모서리마다, 방문마다 발라야 귀신이 역사를 하지 않는다고 그렇게 하는 행위는 부적을 집의 기둥이나 대문에 붙이는 것과 같은 주술적 행위이다. 

 

회개치 않고 용서치 않은 죄가 있고 틈이 있기에 마귀가 공격하는 것이지, 기름을 바른다고 귀신이 도망가리라 생각지 말고,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으면 마귀가 저절로 도망간다는 사실을 알고 성령충만을 구함이 올바른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의 미신적, 주술적 행위를 예언적 행동이라는 명목으로 행하는 사역단체들이나 사역자들은 대부분 미혹의 영에 사로잡혀 영을 분별하지 못하는 단계로까지 들어갈 수 있고, 또 모르고 그러한 행동에 참예하는 자들도 그들의 죄에 동참하는 것이기에 회개하고, 다시는 그러한 일에 참예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지난번에 올린 미국 벧엘교회(빌 존슨)에서 행해진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마술사 간돌프가 마귀를 쫓아내기 위해 마술지팡이를 땅을 향해 세 번 친 행동을 따라 하면서 지팡이로 강단 바닥을 세 번 치고 미국의 인종차별의 영이 떠나라 외친 행위는 예언적 행위가 아니라 주술적 행위인 것이다. 

 

그것도 사역자들이라면서 마술사가 한 행동을 따라서…  그렇다고 인종차별의 영이 물러가지도 않았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믿는 자들은 장난이라도 동전을 물에 던지고 소원을 빈다든지, 신문이나 SNS에 올라오는 별자리나 띠 운세, 그리고 달에게 소원을 빌고, 새해 해맞이 행위를 통해 하는 그러한 행위들은 다 저주받을 행위임을 분별해야 한다(신 18:9-14).

 

악한 마귀를 대적하는 영적전쟁의 무기는 1.하나님의 말씀  2.예수의 이름 3.예수의 피의 권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의 피, 예수의 피, 예수의 피” 하면서 주문적으로 계속 외치면, 어떤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심리적으로나 영적으로 기대하게 하거나 그렇게 한다면 그것도 주술적 행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예수의 이름, 예수의 피는 한번만 외쳐도 그 이름과 그 피에 권세가 있는 것이지, 여러번 반복적으로 외친다고 해서 귀신이 쫓겨가고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도행전 3:6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갈멜산에서 바알의 선지자들은 “바알이여” 하며 오전 내도록 수없이 그 이름을 불렀어도 능력이 나타나지 않았지만, 엘리야 선지자는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왕상 18:37) 하고 한번 불렀어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불로 응답하셨다.

 

또한 베드로전서 1:2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피뿌림”도 보혈의 능력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내 삶에 믿음으로 적용해야 함의 의미를 넘어서서 실제로 물이나 포도주 등을 뿌리면서 피뿌림 의식을 한다면, 그것도 천주교에서 행하는 성수 뿌리기와 다름이 없는 종교적, 미신적 행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믿음은 인간적 기대를 채우기 위한 목적의 주술적 행위가 아니요, 설사 귀신(마귀)이 그 미신적 행위에 응답하여 초자연적인 기적이 나타난다고 해도, 그 결과는 영원한 파멸임을 알아야만 한다. 우상숭배자와 주술에 참예한 자들이 갈 곳은 자명하기 때문이다.

 

계시록 22:15 “개들과 술객들과 행음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 밖에 있으리라.”

 

우리는 빛의 자녀들처럼 행해야 한다. 일어나서 빛을 발해야 한다. 우리가 빛의 신부가 되고 영광의 집이 되어야 한다. 

 

어두움은 빛이 가면 자동적으로 도망가는 것이지, 자신이 아직 어둠에 있으면서 두려워하여 종교적이고 주술적이며 미신적인 행동을 한다고 악을 이길 수는 없는 것이다. 

 

에베소서 5:8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로마서 13:12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이사야 60:1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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