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3-08-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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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365산업경제뉴스DB]

 

 

제자는 자유를 포기하고 종이 되어야 합니다. 먼저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고 하는 것(칭찬)에 대해 포기해야 합니다. 칭찬과 인정을 받으려는 것을 포기해야 하나님의 눈동자 앞에 서게 됩니다. 하나님의 눈동자 앞에 있고도 또 사람에게 칭찬 받겠다는 것은 양다리 걸치는 것입니다. 주님은 늘 양다리를 허용하지 않으시고 둘 중 하나를 선택하게 만드십니다. 물론 하나님이 인정하시면 사람에게도 덕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인정받으면 반드시 사람에게도 인정받는다는 것은 유대교입니다. 기독교는 하나님 앞에 인정받아도 사람에게 고난 받고, 질시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욥의 인생은 유대교에서는 해석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는 사람은 늘 축복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 앞에 있는 사람이 왜 고난 가운데 있을까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고난을 이해하고 통과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권리를 포기하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권리를 회복시켜 주시는지 이해하고 있을 때만 가능합니다. 


두 번째는 진짜 자유(육체의 자유)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옥중에서 살았습니다. 내가 육신에 매어있는 것에 대해서 권리를 포기할 때 북한이나 이슬람 지역에 가서도 선교 할 수 있는 비전이 생길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그곳에 가서 감옥에 가더라도, 내 육신의 자유를 포기하면서까지 가야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실제로 선교를 하는 것보다 옥중에서 더 많은 일을 했습니다. 내 육신이 갇혀있는 것에 대해 두려워하게 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육체의 자유에 대한 권리조차도 포기해야 합니다.


세 번째는 반대 정신입니다. 그것은 온유함입니다. 온유함은 자유함과 맞물려서 그 안에 복종의 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내 안에 탐욕이 있으면 그것과 싸우기 위해서 관용을 가져야 합니다. 내가 독립적으로만 살려고 하면 상호 의존의 정신을 가지고 이겨야 합니다. 부도덕한 영이 있으면 순결의 영으로 이겨야 합니다. 교만이 있으면 겸손함으로 이겨야 합니다. 죄를 은폐하고자 함이 있으면 자기 고백, 자기 노출을 해서 투명함으로 이겨야 합니다. 


예를 들어서 누구에게도 말 못하는 죄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죄가 계속 묻힙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앞에 그 죄를 모든 사람이 알 수 있도록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내 힘으로 안 되니까 그렇게라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반대 정신입니다. 계속 무너지는 자리가 있다면 수치 때문이라도 그 죄를 그칠 수 있도록 “하나님 그 죄를 드러나게 해 주시옵소서” 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겸손함이 오게 됩니다. 반대 정신으로 이기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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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하나교회 정영구 목사 "종의 형체를 가지고 자유 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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