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보통 유명한 사람들이 고백하는 간증을 주목한다. 그래서 우리도 유명해져서 간증해야겠다고 꿈꾼다. 여기서 기인한 것이 소위 말하는 ‘고지론’이다. 하지만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것이 하나 있다.
그들은 유명하게 되서 하나님을 고백하게 된 것이 아니라 무명했을 때부터 하나님을 고백해왔다는 것이다. 단지 우리가 주목하지 못했을 뿐이다. 고지론의 함정은 ‘그 사람’ 참 멋지다 라는 생각에서 기인한다. 나도 그렇게(그 사람처럼) 되고 싶다 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래서 나도 잘 되고 하나님 이름도 높이고 모든 것이 좋아보여 우리로 하여금 이 마음을 품는 것이 매우 성경적이라는 생각을 주입한다. 한 편 지금 당장 하나님을 간증하지 않아도 된다는 편안함도 준다. 아직 높은 곳에 올라가지 않았기 때문에 이 목소리는 아껴두는 것이라는 정당성도 있다. 하지만 이것을 일종의 완벽한 자기 합리화이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하나님은 이 상황을 통하여 우리가 ‘그 사람’을 주목하길 원하시지 않고 ‘하나님’을 주목하길 원하신다는 것이다.
‘유명해진 사람’이 고백하는 말이 아니라 그 사람으로 하여금 무명의 시절부터 함께 해오신 ‘하나님’을 주목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무명의 시절을 견디게 하신 ‘하나님’… 무명의 시절부터 한결같이 고백할 수 밖에 없었던 그 이름 ‘하나님’을 우리는 주목해야만 한다.
우리가 도전받아야 할 것은 ‘유명해져서’ 하나님을 고백하는 ‘훗날’이 아니라 ‘무명하지만’ 하나님으로 인해 살고 있다고 고백하는 ‘오늘날’이다.
오늘 있는 그 자리에서 그리스도의 꽃을 피우며 하나님만으로 살고 있다고 하나님 때문에 견딘다고 자랑스럽게 그 이름을 자랑하며 살아가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