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3-08-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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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의 믿음은 모든 기독교신앙의 출발점이다. 복이든 저주이든 하나님께 전부 맡기는 것이 믿음이다. 거기에서 희생될 수 있는 부분이 바로 인간관계이다.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이삭은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고귀한 사랑을 받고 자란다. 그런데 인간에게서 참된 이웃사랑을 찾아볼 수 없는 이유는 그 고귀한 사랑을 자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타인을 볼 때 자기 자신과 같이 볼 수 없다면 이웃사랑은 존재할 수 없다. 가장 소중한 인간관계, 자기 목숨보다 더 중요한 인간관계를 깰 수 있다면 하나님의 시험은 통과된다. 이웃사랑에 대한 중대한 원리는 그 모든 결과를 하나님께 완전히 맡길 때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천국에 가면 뱀으로 인하여 내리셨던 그 어떤 벌이나 심판도 존재하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천국에는 오로지 사랑만이 존재한다. 왜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이야기에 천국을 제시하겠는가? 원형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천국이다. 낙원을 잃어버린 결과가 지금 현재라는 사실을 단 한 순간도 잊어버리면 안 된다. 왜냐하면 원래 우리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어야 그나마 조금이라도 진정한 이웃사랑에 근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인류사에서 단 한 번 남자의 다스림을 받지 않은 여자를 통하여 메시아를 허락하셨다. 뱀을 끌어들인 여자로 하여금 그 뱀을 다시 쫓아내도록 하셨던 것이다. 우리는 뱀을 쫓아내기 위해서 남자(죄인)의 다스림을 받으면 실패할 것이고 예수님(의인)의 다스림을 받으면 성공할 것이다. 적어도 복음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떤 상황 가운데에서도 온전히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아야 뱀을 제거할 수 있는 것이다.
땅의 해방, 육신의 해방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선민이라 할지라도 일시적으로 자신의 소유를 잃어버린 것을 방치하면 격차는 영구해지고 신분도 정해질 것이요 그것이 고착화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웃사랑의 원리에 따라 아예 제도적으로 이웃사랑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주신 것이었다. 누군가가 소외되거나 가난해질 가능성을 최소화함으로써 이스라엘에는 가난한 사람이 없게 하기를 힘쓰시며 동시에 백성들에게는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허용하는 것이 희년개념인 것이다.
우리는 정의를 말하기 이전에 먼저 사랑을 말해야 한다. 정의는 심판으로 이어지고 사랑은 용서로 이어지지만 하나님은 이 모순되는 개념을 같은 것으로 판단하신다. 하나님의 정의는 사랑과 용서로 성취될 수 있다. 가난하든 부자이든 이웃은 사랑의 대상이다. 가장 차별을 많이 받을 수 있는 타국인들도 결코 차별하여 판결하지 말라고 강조하신다. 이스라엘의 이웃사랑은 누구를 도와주기 이전에 사람들에 대해서 편견을 가지지 말고 공의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일이 우선이다.
그러나 이웃사랑의 본질이나 방향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성경이 말하는 이웃이 공동체 내의 형제를 말한다고 해도, 오늘날 이웃사랑의 내용이나 방법과 동일해야 한다. 구약에서는 민족 공동체를 거룩하게 하기 위한 이웃사랑이었다면 신약 이후에는 영적인 공동체를 거룩하게 지켜내는 이웃사랑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교회는 안으로 걸어 잠그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침범하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이웃사랑을 분출해내야만 한다. 그리스도인의 이웃사랑을 통해서 반드시 그리스도의 사랑이 전달되어야 한다. 언어로서의 복음이 제대로 전달되기 위해서 이웃사랑이라는 삶으로 본질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이웃사랑의 가장 핵심적인 개념이다.
이웃사랑은 영혼사랑이다. 우리가 우리의 영혼을 사랑하지 못한다면 사실상 이웃의 영혼을 사랑하기는 어렵다. 우리는 우리의 영혼을 뜨겁게 사랑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은 내가 내 영혼을 위해서 그렇게 애를 쓰고 노력한다면 다른 사람의 영혼도 내 자신의 영혼만큼 사랑해야 한다는 뜻이다.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는 차원이 아니라 그들의 영혼까지 걱정하고 사랑해주는 것이 진정한 이웃사랑이다. 우리는 누가 구원에 이르게 될지 전혀 알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그리스도의 복음을 널리 전파하고 불신이웃들의 영혼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이웃의 영혼들을 사랑하려고 하면 알게 모르게 어려움이 오고 문제가 생기고 힘들어지고 상황이 복잡해질 수 있다. 이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지 않으면 이웃사랑은 끝까지 감당할 수 없게 된다. 영적 싸움의 승리의 비결은 무엇인가? 인간적인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영적 싸움은 세상적인 논리나 힘을 의지하면 실패하게 되어 있다. 마귀는 절대로 행할 수 없는 원수사랑 같은 것을 행하게 되면 그것은 마귀에게 치명타가 된다. 세상의 힘이나 권력이나 능력이나 재능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것이 모든 영적 싸움의 비결인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이웃을 사랑한다.
복음은 다양한 방법으로 이웃들에게 전파된다. 기본적으로는 나눔과 섬김을 통해서 복음의 생명력이 전파된다. 그리스도께서 목숨을 내어주신 극진한 사랑으로 이웃을 돌보는 섬김이 가장 핵심적인 복음전파의 통로이다. 하나님의 최상의 복음은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생명을 버리시고 십자가에 죽으신 것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세상을 따라 산다면 그 사람은 거듭난 사람인가? 성경에는 싸우면서도 복음이 전파되어야 하고 고난을 당하더라도 전파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심지어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 다투는 사람들을 통해서조차 복음은 전파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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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신앙회복연구소 대표 김완섭 목사, '이웃의 문을 활짝 여는 나눔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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