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3-08-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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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께서 내게 대해 주시듯”
(마18:21-35)

1.용서에 대한 문제는 언제나 어렵다. 제 아무리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우리 안에는 타락한 본성이 남아 있어서, 쉽사리 용서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2.겉으로 혹은 입술로만 ‘용서할게’라고 말을 건내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 깊은 곳에서 다시는 그 일로 인하여 문제 삼지 않고 어떠한 기억도 떠올리지 않는 정도의 용서를 하는 일은 정말로 어렵다.
3.베드로는 자신이 꽤나 너그러운 사람이라 스스로 생각했던 것 같다. 여러차례 다른 사람들의 실수나 허물을 덮어주었던 경험을 토대로 ‘누군가를 일곱번이나 용서하면 충분한 용서지요?’ 하고 주님께 칭찬을 받고 싶었다.
4.그러나 주님께서는 일곱번이 아니라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용서를 해주라 말씀하셨다. 물리적인 490번이라는 숫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용서를 스스로 제한하여 어느 정도면 됐다는 그 기준 자체를 허물어야 한다는 의미에서였다.
 
5.그러면서 빚진 자의 비유를 말씀하신다. 요점은 감당할 수 없는 큰 빚을 탕감받은 자가 그에 비할 수 없는 작은 빚을 진 타인을 탕감해주지 않은 한마디로 배은망덕한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책망하는 점이다.
6.이 말씀을 가만히 곱씹어 우리의 실제 삶과 연관지어 보면, 용서는 용서를 받은 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깊게 파고든다. 돌이킬 수 없는 끔찍한 죄에서 용서를 받은 사람이라면, 자신이 겪는 어떤 수모나 손해 앞에서도 그 사람을 용서할 수 있다. 더 큰 일들을 자신은 용서받았기에.
 
7.결국 우리 자신을 향한 타인의 잘못을 용서하지 못하는 자는, 영죽을 죄에서 용서받고 구원을 얻은 우리의 경험을 인정하지 않는 자나 혹은 기억치 못하는 자라 말할 수 있다.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기로 결단하신 그리스도를 바라본다면, 이 땅에서 우리가 용서하지 못할 사람은 없다.
8.물론 이 ‘원리’적인 말씀을 실 생활에 어떻게 적용하는가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우리의 일상의 성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하루아침에 그렇게 되기야 힘들겠지만, 분명한 목적지가 어디인지 알지 못하고 출발하는 것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9.우리의 최종 목적지에 ‘용서’의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조금 더디고 어렵게 가더라도, 반드시 가야 할 자리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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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드하우스 대표 박길웅 목사, '주께서 내게 대해 주시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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