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보다 더 중요한 일”
1.가난하고 병든 자들, 특별히 어려운 자들을 돕는 일에 그 누구보다도 예수님께서 마음 쓰시고 그들의 친구가 되어주신 사실은 성경을 읽은 자들이라면 누구나 명백히 아는 사실이다.
2.예수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 계실 때의 일이다. 어느 한 여인이 갑자기 나타나 예수님께 매우 값비싼 향유를 깨뜨려 부어드렸다. 이런 놀라운 일에 금액으로 환산하는 자체가 우스꽝스럽지만, 평행본문인 마가복음 14장 5절에 의하면 약 300 데나리온의 값어치가 있는 향유였음을 알 수 있다.
3.통상적으로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 임금이라 가정한다면, 크게 잡아 평범한 노동자의 약 1년치 연봉으로 볼 수도 있고 경제적으로 합당한 대우를 받기 더 어려운 여인들의 같은 경우라 친다면 몇 년치라는 기준 보다는 평생에 모은 전재산 정도로 비유하는 것이 좋을 듯 싶다.
4.어쨌든 이처럼 한 사람의 인생의 전부가 걸린 혹은 한 사람의 연봉정도의 고가의 향유를 한 사람의 머리에 붓기 위해 그 자리에서 과감하게 깨뜨렸다는 사실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충격적이겠지만, 그 현장에서 직접 눈으로 보았던 제자들의 눈에는 얼마나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5.제자들은 순전한 나드 옥합을 깨뜨린 여인에 대한 걱정과 염려 보다는 무려 삼 백 데나리온이나 되는 향유가 바닥에 흘러 넘치도록 부어진 ‘아까운’ 이 현상에 주목하였다. 뿐만 아니라 가난한 자들에 대한 늘 긍휼한 마음을 가지신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고자 하는 마음에, 여인을 나무라며 ‘이 아까운 것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면 더 좋았겠다’ 열을 올렸다.
6.그 때 주님이 말씀하셨다. “이 여인을 괴롭게 하지 말라. 그가 ‘나를 위하여’ 좋은 일, 곧 장례를 준비하고 있다”며 여인을 감싸셨다. 누구보다도 허례허식을 싫어하시는 주님이 그것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고 베풀면 더 유용하게 쓰일 것을 왜 모르셨겠는가?
7.그러나 주님의 초점은 다른 곳에 있으셨다. 가난한 자들을 돌보는 구제는 매우 중요하며 앞으로도 지향해야 하는 우리의 삶의 일부가 되어야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는 것을 제자들로 하여금 깨닫게 하시는 일이었다.
8.가난한 자들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으며 언제든 우리가 가진 것으로 크게 때로는 작게 섬길 수 있다. 그러나 십자가로 향하시는 주님의 발걸음을 기억하며, 대속의 죽음을 준비하시는 주님의 때는 순간적이며, 기회적이며, 지금이 지나면 훗날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정해진 때가 있는 것이다.
9.주님은 가난한 자들을 돌보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셨다. 이처럼 우리의 삶에서 중요한 일과 더 중요한 일을 구분하는 우선 순위의 설정이 필요하다. 지금이 아니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바로 오늘’의 순간에 감당해야 할 일들이 있다면 흘려 보내지 말고 꼭 그 옥합을 깨뜨려 마땅히 부어 드려야 할 곳에 부을 수 있는 용기가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