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3-08-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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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지고 골고다로> 책 이야기 2 - 책 속에서


너무 십자가의 의미를 중심으로 제목을 정한 것 같습니다. 골고다로 가라고 하면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더구나 십자가를 지고 말이죠. 그러나 이 책은 주님께서 지셨을 법한 무게와 크기의 십자가를 직접 체험해본 이야기입니다. 무거운 십자가를 한 번 져봤다고 해서 공로도 아니고 자랑도 될 수없습니다. 만약에 그렇다면 십자가를 지지 않는 것이 훨씬 좋습니다. 


제가 특별한 체험을 한 이유는 순전히 저 자신을 버리기 위해서입니다. 오로지 나의 변화를 위해서였습니다. 경험을 통한 신앙의식의 깨우침 없이는 변화가 어렵습니다. 저의 모든 체험과 집필활동들은 오직 변화를 위해서입니다. 신앙의식의 변화를 통한 목회자의 변화, 성도의변화, 교회의 변화입니다. 그 길만이 살길이기 때문입니다. 그 변화의 핵심이 바로 십자가 체험이라는 것입니다. 꼭 읽어보시고 도전을 받으심으로써 변화를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변화되지 않아도 될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십자가의 무게는 동일하다.


“바라바가 자기 대신 십자가를 예수님이 지도록 했다면 저 역시 저 대신 예수님께서 제 십자가를 지도록 만들었습니다. 바라바가 자기 욕심을 따라 마귀의 종노릇하던 사람이었다면 저도 똑같이 저의 욕심을 따라 마귀의 종노릇하던 사람이었습니다. 바라바가 영원토록 멸망하지 않을 수 있도록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셨다면 저 역시 영원한 멸망에 빠지지 않도록 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바라바와 저는 똑같은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바라바 대신 지셔야 할 예수님의 십자가는 500kg이어야 하고 저 대신 지셔야 할 예수님의 십자가는 10kg쯤 되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바라바를 위해 지신 십자가의 무게와 저를 위해 지신 십자가의 무게는 동일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고통과 치유사역


"그런데 예수님은 인간이 당할 수 있는 모든 고통보다 더 큰 고통을 당하시고서야 돌아가셨습니다. 고통으로 점철된 죽음의 모든 과정을 전부 감당하셨던 것입니다. 그 고통의 의미가 곧 치유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서 당하신 모든 고통은 인간의 고통을 대신 하신 것인데, 예수님의 그 고통을 소유하는 사람에게는 진정한 치유가 임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채찍질 당하시고 머리에 가시관이 씌워지시고 십자가상에서 양손과 발목에 못을 박히는 그 고통을 당하신 이유가 바로 신앙인의 치유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물론 그 치유라는 표현은 인간의 육체적, 정신적, 영적인 모든 영역을 뜻합니다. 


그렇다면 엄밀한 의미에서 치유사역은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통 속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모든 것은 다 치유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제대로 만나기만 하면 우리가 살아오면서 당했던 모든 고통과 아픔은 예수님의 그 고통 속으로 저절로 스며들어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극심한 고통도 절대 비교할 수 없는 예수님의 그 고통을 체험하면 자연스럽게 다 치유가 된다는 말입니다.“


주기도문과 가상칠언


"이렇게 주기도문과 가상칠언을 대입해 나간다면 더욱 정확한 일치가 이루어지는 것을 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가상칠언은 주기도문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기도였습니다. 비록 순서까지 딱 들어맞는 것은 아니지만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성도들이 기도해야 할 내용들을 극심한 고통 중에서 펼쳐 보여주신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리신 것은 로마의 사형법이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의 사역의 성취를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시간들이었습니다. 십자가에 매달려보고 나서야 이런 생각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주님과의 조금이라도 깊이 있는 교제를 위하여 성령님께서 이런 은혜를 허락해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


"다시 말하지만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고난은 완전합니다. 일부러 보충하라고 남겨놓으신 고난이란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을 어떤 신학자는 왕의 명령으로 전쟁터에 나가서 왕을 대신하여 싸우는 병사에게 주어진 역할과도 같다고 말합니다. 왕이 직접 적군과 싸울 수는 없으므로 왕이 당해야 할 일을 병사들이 감당하는 것이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싸우셨던 싸움을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지상에서 싸우고 있는 성도들의 삶의 이치와 같다는 말입니다. 정확한 표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저는 또 이렇게 표현하고 싶습니다. 큰 성을 침략한 적군과 전쟁이 벌어졌는데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분명히 완전한 승리를 거두었지만 승리를 거두었다고 해서 무너진 성벽이며 부러진 무기들이나 불에 탄 주택들이 저절로 재건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전쟁에서 크게 승리했더라도 부서진 성벽을 중수하고 재건하는 일은 여전히 남아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남은 고난의 이치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십자가의 증인


"십자가의 증인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마귀와의 영적 싸움이 십자가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리스도의 증인이요 부활의 증인인 것은 틀림이 없고 또 그런 증인의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모든 사역이 십자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우리도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짊어지기 위해 항상 십자가를 증거하고 십자가의 삶을 살아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부활을 위한 전제조건입니다. 십자가의 고난에 참여하지 못하면서 부활의 증인이 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장 기본적인 자세를 십자가의 증인에 맞추어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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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신앙회복연구소 대표 김완섭 목사, '십자가 지고 골고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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