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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멜론 트랙제로 3월 ‘이달의 아티스트’ 선정 ‘노래하는 목사’ 황푸하
    [사진제공=멜론] 싱어송라이터 황푸하가 ‘노래하는 목사’라는 독특한 수식어를 얻게 된 배경과 자신만의 음악적 신념에 대해 털어놓는다.카카오엔터테인먼트의 뮤직플랫폼 멜론(Melon)은 인디음악 활성화 프로젝트 ‘트랙제로’를 통해 3월 ‘이달의 아티스트’로 선정된 싱어송라이터 황푸하와 함께 한 다채로운 음악 이야기들을 2일 오전 10시30분 멜론 스테이션에서 공개한다. 포크 뮤지션인 황푸하는 이날 멜론 스테이션 ‘트랙제로’ 초대석에 출연해 ‘노래하는 목사’가 된 비하인드 스토리, 이름에 담긴 뜻, 싱어송라이터를 꿈꾸게 된 계기, 숨은 명곡 플레이리스트 등을 전한다. 이어 지난해 발매한 정규 3집이자 출애굽기(Exodus)에 대한 미학적 해석을 담은 앨범 ‘두 얼굴’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하며 리스너들과 소통할 예정이다.신앙 생활과 음악 두가지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황푸하는 “아름다움, 사랑 등이 ‘신’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을 담으려면 그릇이 있어야한다. 그래서 ‘노래’가 신을 볼 수 있는 창문인 것”이라며 자신만의 음악철학도 진지하게 털어놓는다.이와 함께 황푸하가 지금까지 발매한 명곡들을 담은 ‘트랙제로’ 플레이리스트도 멜론에 이날 공개된다. ‘첫 마음’, ‘칼라가 없는 새벽’을 비롯해 김사월이 피처링으로 참여한 ‘멀미’ 등 총 15트랙의 다양한 분위기의 음악들은 청취자들에게 큰 감동을 선사할 것으로 기대된다.뿐만 아니라 황푸하는 ‘멜론매거진’과의 인터뷰를 통해서도 세번째 앨범 ‘두 얼굴’을 통해 파격적인 도전을 하게 된 이유와 에피소드 등을 밝히고, ‘아름다움’이라는 실제를 어떻게 꺼낼 것인지 계속해서 고민하고 있는 이야기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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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3-02
  • [오늘의 말씀] 스위스한인교회 김정효 목사 "축복의 회복을 위하여(학개 2:10-19)"
    [성경 / 365산업경제뉴스DB] 다리오 왕 이년 구월 이십사 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는 제사장에게 율법에 대하여 물어 이르기를, 사람이 옷자락에 거룩한 고기를 쌌는데, 그 옷자락이 만일 떡에나, 국에나, 포도주에나, 기름에나, 다른 성 물에 닿았으면, 그것이 성 물이 되겠느냐 하라! 학개가 물으매, 제사장들이 대답하여, 아니니라! 학개가 가로되, 시체를 만져서 부정하여진 자가, 만일 그것들 중에 하나를 만지면 부정하겠느냐?' 제사장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부정하겠느니라!' 이에 학개가 대답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에, 내 앞에서 이 백성이 그러하고, 그 손의 모든 일도 그러하고, 그들이 거기서 드리는 것도 부정하니라! 이제 청컨대 너희는 오늘부터 이전 곧, 여호와의 전에 돌이 돌 위에 첩 놓이지 않았던 때를 추억하라! 그 때에는 이십 석 곡식더미에 이른즉 십 석뿐이었고, 포도즙 틀에 오십 그릇을 길으러 이른즉, 이십 그릇뿐이었느니라!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희 손으로 지은 모든 일에, 폭풍과, 곰팡과, 우박으로 쳤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이키지 아니하였느니라! 너희는 오늘부터 이전을 추억하여 보라! 구월 이십 사일, 곧 여호와의 전 지대를 쌓던 날부터 추억하여 보라! 곡식 종자가 오히려 창고에 있느냐? 포도나무, 무화과 나무, 석류나무, 감람 나무에 열매가 맺지 못하였느니라! 그러나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 (학개 2:10-19)“ 주전 586년 유다 왕국의 왕 시드기야 제11년 4월 9일에 예루살렘이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군대에 함락됨으로써, 유다 왕국은 멸망을 당했고 왕과 왕족들과 귀족들과 장정들과 기술자 등 많은 유다 인 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칠십 년 세월 동안 비참한 포로생활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선민(選民) 이스라엘이 이처럼 처절하게 망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보내신 선지자들의 책망과 경고에도 불구하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뜻을 멸시하고 이방인들처럼 우상(偶像)을 숭배하며, 온갖 악행(惡行)들을 저지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역대하 36:15-20). 그런데 절대로 망하지 않을 것만 같던 대 제국 바벨론이 메대와 바사의 연합군에 의해 멸망당하고, 유다 인 포로들은 바사 왕 고레스의 조서에 의해 포로생활 칠십 년 만에 꿈에도 그리던 고국 땅으로 귀환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자비로우신 하나님의 섭리(攝理)의 역사(役事)였고 선지자 예레미야의 예언의 성취였습니다(역대하 36:21-23). 바벨론 포로생활 칠십 년 만에 그리던 고국 땅으로 돌아온 유다 인들은 그들을 해방시켜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오직 하나님의 뜻만을 이루어드리는 신앙 공동체를 회복할 것을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올리는 예배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위해 예루살렘 성전재건공사에 착수했습니다. 건자재를 구입하고 필요한 인부들을 고용하는 등, 나름대로 준비를 마친 그들은 예루살렘에 귀환한지 이년 두 달 만에 예루살렘성전 재건공사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그 공사는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온갖 수단 방법을 동원해 공사를 방해하는 주위의 적들 때문에 겨우 <전 지대공사(殿地臺工事)>만을 마친 체, 더 이상 공사를 진행시키지 못했습니다. 해방의 감격이 시들어지면서 그들의 신앙의 열정도 같이 시들어 들었고, 그들은 여건이 되어있지 않다는 핑계로 성전건축을 계속 미뤘습니다. 그러면서 포로생활에서 귀환한 유다 인들은 하나같이 재산 모으는 일에만 열중했습니다. 그리고 부를 축적한 그들은 서로 경쟁하듯이 화려한 저택을 지어 기거하며 쌓은 부를 과시했습니다. 어느 사이에 그들의 이전의 신앙의 열정은 사라지고 그들의 삶은 점차 세속화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중심주의의 삶을 목표로 했던 신앙공동체의 삶이 이제는 세속적인 인간중심주의의 삶으로 변질된 것입니다. 물론 그들에게 여전히 신앙적 습관은 남아있었지만, 실제로는 그들의 마음은 이미 하나님에게서 멀어져 있었습니다.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귀환한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 하나님께서 거하실 처소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은 그들을 떠나셨고, 그때부터 그들에게는 외적의 침입과, 기근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들은 결국 경제적으로 그 형편이 말할 수 없이 궁핍해졌습니다. 심지어 그들 중에 어떤 이들은 굶주림을 견디지 못해 자청해서 남의 집 종으로 팔려가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이 같은 가난과 궁핍의 원인을 알지 못한 체 한탄만 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그들에게 선지자 학개를 보내셨고, 그들의 불신앙과 불순종을 책망하시며 그들에게 주어진 사명인 성전복구공사를 재개할 것을 명하셨습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것이 무슨 연고뇨? 내 집은 황무하였으되, 너희는 각각 자기의 집에 빨랐음이니라! 그러므로 너희를 인하여 하늘은 이슬을 그쳤고, 땅은 산물을 그쳤으며, 내가 한재를 불어 이 땅에, 산에, 곡물에, 새 포도주에, 기름에, 땅의 모든 소산에, 사람에게, 육축에게, 손으로 수고하는 모든 일에 임하게 하였느니라! (학개 1:9-11)“ 세속적인 가치관에 얽매인 인본주의적 신앙은 복을 받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모든 백성이 그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와, 선지자 학개의 말을 청종하였으니, 이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를 보내셨음을 인함이라! (학개 1:12)“ 백성들은 선지자 학개의 말을 듣고서야 비로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떠나신 것과, 그 결과로 그 많은 재난과 역경들이 그들에게 닥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공동체>는 그들의 불신앙과 불순종을 회개했고, 이전처럼 주저함이나 지체함이 없이 모두가 합심하여 그들의 재산을 드리고, 그들의 인력을 동원하여 중단된 <성전건축>을 재개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그들 이스라엘 공동체에 신앙회복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들의 인간중심주의 삶이 하나님 중심주의의 삶으로 회복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이스라엘 신앙공동체에 다시 임 재하셨습니다. „이 땅 모든 백성아,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할지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로다! (학개 2:4)“ 무슨 뜻입니까? 내가 다시 너희 편이 되어주시겠다는 뜻입니다. 내가 다시 너희를 축복해 주시겠다는 뜻입니다.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 (학개 1:12)“ 만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면, 그 어떤 어려운 문제도 능히 해결되고 범사가 잘 됩니다. 우리에게서 상실된 축복의 회복을 위해서는 우리에게서 상실된 신앙회복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인본주의 신앙이 아닌 신본주의의 신앙 곧 하나님 중심주의의 삶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참된 회개입니다. 인본주의(人本主義)의 삶은 본질적으로 자아중심주의(自我中心主義)의 삶입니다. 스스로가 삶의 주인입니다. 스스로가 삶의 주인이기에 오직 자신의 영광과 자신의 유익과 자신의 기쁨만을 추구합니다. 포로생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신앙 공동체가 바른 신앙에서 벗어나 이렇게 행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서 축복을 거두시고 그들에게서 떠나신 것입니다. 신본주의의(神本主義) 삶은 하나님 중심주의의 삶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성별 되고 하나님께 소유되어졌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삶의 주인이십니다. 모든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기쁨과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합니다. 그러기에 신본주의의 삶은 거룩한 삶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복 주시는 삶입니다. 이스라엘 공동체가 자아 중심주의의 삶에서 돌이켜, 하나님 중심주의의 삶을 회복했을 때, 하나님은 다시 그들의 편이 되어주셨고 다시 그들을 축복해 주셨습니다. 구체적으로 무엇이 하나님 중심주의의 삶입니까? (1)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삶입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린도전서 10:31)“ 성도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도록 부름 받은 사람들입니다(소요리문답: 제1번).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로마서 12:2)“ (2)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삶입니다.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고린도후서 5:9-10)“ (3) 죄를 멀리하는 삶입니다.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 보다 가까웠음이니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로마서 13:11-14)“ (4) 사랑으로 역사하는 삶입니다(마태복음 22:37-40, 로마서 13:8-10).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도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로마서 13:8-10)“ (5) 하나님나라의 일을 위해 헌신하는 삶입니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 이로라!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사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 (로마서 14:7-9)“ 옛날 유럽의 군주들은 자신들을 위해 궁궐을 짓고, 반대자들을 가두기 위해 궁궐 밑에 감옥을 지었습니다. 인본주의적 사고입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지 않으셨습니다. 결국 유럽의 구질서는 시민혁명과 사회주의 혁명으로 종말을 고하고 말았습니다. 미국을 건설한 개척시대의 청교도들은 예배를 드리기 위해 먼저 예배당을 지었고, 다음으로 신앙교육을 위해 학교를 지었습니다. 신본주의적 사고입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셨습니다. 세계 최강의 나라가 되게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청교도 정신에 의거한 미국의 가치관과 미국의 시민정신이 근대 문명사회의 확립을 위한 세계인의 정신적 지주가 되게 해주셨습니다. 미국의 석유재벌 록펠러(John Davison Rockefeller 1839 ~ 1937)는 43세에 이미 세계에서 가장 큰 회사를 경영했고, 53세 때는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오락도 즐기지 않았고, 술 담배도 일절 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돈 버는 일만이 그의 취미였고, 사업확장만이 그의 관심사였습니다. 석유사업으로 돈을 번 그는, 석유사업을 독점하기 위해, 미국 내 동종사업자들을 무자비하게 파산시켜 모두 그의 회사에 합병시켰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는 마침내 미국의 석유사업의 95퍼센트를 독점하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그 과정에서 그에게 원한을 품은 많은 적들이 생겨났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를 욕했고, 그에게는 악덕기업주라는 오명이 따라다녔습니다. 오죽하면 그가 한 교회에 거금 10만 달러의 기부금을 냈을 때, 그 교회의 목사가 설교시간에 ‚이 돈은 더러운 돈입니다! ‘고 선언하며, 그 기부금에 대한 거부의사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20세기 초 10만 달러는 참으로 거금입니다 어쨌거나 그렇게 해서 그는 그의 나이 53세 때, 마침내 세계 최대의 갑부가 되었지만, 바로 그때부터 원인도 모르게 그의 건강이 나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몸이 극도로 쇠약해졌고, 몸에 악성 피부병도 생겼습니다. 머리카락과 눈썹까지도 빠져나갔습니다. 식사 때 마다 몇 조각의 비스킷과, 물로 식사를 대신할 정도로까지 그의 건강은 악화되었습니다. 그는 무엇에 쫓기듯 불안함에 떨며 잠을 이루지 못했고, 기쁨과, 행복감을 상실한 그의 얼굴은 무표정하게 굳어갔습니다. 록펠러를 진단한 의사들은 그가 1년 이상 살 수 없을 것이라 말했고, 그를 미워하는 언론사들은, 그가 사망했다는 기사를 미리 작성해놓고, 그의 죽을 날을 기다리기도 했습니다. 독실한 기독교신자였던 록펠러는, 자신의 지난 날의 삶을 돌이켜보며, 그가 물질에 눈이 어두워 신자답게 바르게 살지 못했음을 하나님 앞에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죽기 전에 그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변호사를 불러 문서를 작성했습니다. 그의 재산을 교회와, 사회 복지시설과 그밖에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게 했습니다. 또 인류의 복리를 위한 재단을 설립해 식량, 인구, 의학, 교육, 문화 등 다방면에 걸친 <연구활동>을 지원토록 했습니다. 그의 재산은 재산관리인들에 의해서 문서에 작성된 용도대로 집행되었습니다. 영국의 알렉산더 플레밍(Alexander Fleming, 1881~1955이 발명한 항생제 페니실린은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건졌습니다. 과연 기적의 약입니다. 록펠러 재단은 이 페니실린의 개발을 위해서도 전폭적인 재정지원을 했습니다. 그의 재산이 이처럼 다방면으로 인류복리를 위해 쓰이게 될 때, 그에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최악으로 치닫던 그의 건강이 다시 회복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잠을 잘 잘 수 있게 되었고, 음식도 정상적으로 섭취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큰 변화는, 무표정하게 굳어있던 그의 얼굴에 웃음이 돌아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의사들은 그가 일년도 못살고 죽게 될 것이라고 했지만, 그는 그 후 45년을 더 살며 98세까지 장수를 누렸습니다. 신자인 그가 탐욕에 찌들었던 지난날의 인본주의적 삶을 회개하고, 사랑과 희생으로 세상을 위해 봉사하는 신본주의적 삶을 회복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축복하셨고, 그와 함께 그의 건강을 회복시키시고, 그의 기쁨과 행복을 회복시키시고, 그의 명예를 회복시키셨습니다.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 (학개 2:19)“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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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2-15
  • [오늘의 말씀] 스위스한인교회 김정효 목사 "바울과 바나바의 결별(사도행전 15:30-41)"
    [성경 / 365산업경제뉴스DB]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에 유하며, 다수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주의 말씀을 가르치며 전하니라! 수일 후 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하니,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한가지로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 서니, 바나바 는 마가를 데리고 배타고 구브로로 가고,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 고 떠나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녀가며 교회들을 굳게 하니라! (사도행전 15:35-41)“ 1. <안디옥 교회>의 <바울>과 <바나바>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더라!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사도행전 11:24-26)“ <안디옥>은 <로마제국> 당시 <로마 시>와, <애굽>의 <알렉산드리아>에 이어 세번 째로 큰 대도시였습 니다. 안디옥은 오늘날의 <시리아>의 북부 지역에 위치한 도시로 당시 인구는 오십 만 가량이었습니다. 이 도시에 많은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거주하고 있었는데, <예루살렘 교회>에 대대적인 박해가 가해지자 많은 기독교인들이 안디옥으로 피신을 가 그곳에서 새로 교회를 세웠습니다. 이 <안디옥 교회>의 특징은 <예루살렘 교회>가 <선민의식(選民意識)>이 강한 <유대인>들만의 교회였 다면, <안디옥 교회>는 <유대인>이라는 벽을 허물고 편견 없이 모두를 품는 <이방인 교회>였다는 것입니다. 이 지도자 없는 안디옥 교회가 날로 부흥되자, 이 소식을 들은 예루살렘 교회는 안디옥 교회를 지도하고 이끌도록 <바나바>를 파송했습니다. 바나바의 지도하에 안디옥 교회는 더 크게 부흥했고, 바나바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규모가 커진 안디옥 교회에 이제는 함께 이끌어줄 <동역자>가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바나바는 예루살렘 교회에 도움을 요청하는 대신에, 그가 오래 전 <예루살렘 교회>에서 만나 잠시 교류했던 <다소> 지방의 <사울>을 데려와 함께 사역했습니다. <다소>는 오늘날의 <터기>의 남부지방입니다. 후에 <사도 바울>로 불린 이 사울은 탁월한 지식인이었고, <유대교>에 열심인 자로서, 한때는 기독교인들을 박해하는데 앞장선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다메섹 도상(道上)>에서 <부활의 주님>을 만나 변화를 받았고, <복음전도자>가 되기 위해 예루살렘 교회를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스데반 집사>를 돌로 쳐죽이도록 사주하는 등, 그의 과거의 악행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예루살렘 교회 지도부의 기피로 그는 뜻을 이루지 못하고 고향 <다소>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그가 고향으로 돌아가기 전 그의 진정을 이해하고 포용해준 한 사람을 만났는데, 그가 바로 예루 살렘 교회 지도자들 중의 한 사람인 <바나바>였습니다. 바나바는 <구부로> 출신으로 사울처럼 <디아스포라 유대인>이었습니다. 믿음이 좋고, 심성이 착한 바나바는 이런 사울의 가치를 누구보다 먼저 알아보았고, 함께 복음을 전하기 위해, 그를 아량과 덕이 많은 <야고보 사도>에게 소개시켰습니다(사도행전 9:26-30, 갈라디아서 1:18 -19).그럼에도 사울은 여의치 않은 상황 때문에 곧 바로 고향 다소로 돌아가야 했고, 사울의 가치를 알아봤던 바나바는 이런 사울의 처지를 안타깝게 여겼습니다(사도행전 9:26-30). 사울에 대한 바나바의 안목은 적중했고, <바울과, 바나바>의 동역으로 안디옥 교회는 더욱 크게 부흥 했으며, 사울의 탁월한 지도력과, 가르침으로 안디옥 교회는 신앙적으로, 교리적으로 든든히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교회가 든든히 세워지자 안디옥 교회는 본격적인 <이방 전도>를 위해 금식하며 기도했고, 성령의 지시 에 따라 사울과 바나바를 <이방의 선교사>로 파송했습니다.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사도행전 13:2-3)“ 이렇게 바울과 바나바의 <1차 전도여행>이 시작되었는데, 사울의 탁월한 <전도의 능력> 때문에 그들이 가는 곳마다 많은 <결신자>들이 생겨났고, 그들을 위한 새로운 <교회공동체>가 생겨났습니다.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칭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사도행전 13:48)“ 2. <바울>과 <바나바>의 <결별>과 특별한 <하나님의 계획>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해를 얼마나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사도 행전 9:15-16)“ 1차 전도여행 도중에 유대에서 내려온 <율법주의자>들이 바울과 바나바의 전도를 받고 이제 막 예수를 믿기 시작한 <이방인>들을 상대로, <이방인 교인>들도 <유대인 교인>들처럼 <율법>을 지키고, <할례> 를 받아 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가르침으로써, 바울과 바나바의 <전도사역>을 교란시켰습니다. 이 문제로 이들과 크게 다투며 논쟁을 한 바울과 바나바는, 이 <율법과 할례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 을 위해 예루살렘 교회를 방문했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 교회에 그들의 <이방전도>의 결실에 대해서 보고를 했고, 그들의 보고를 기뻐한 예루 살렘 교회 지도부는 <율법과 할례 문제>에 대한 답을 주기 위해 즉시로 <지도자회의>를 소집했습니다. 그런 다음 새로운 <교회공동체> 안에 더 이상 율법과 할례 문제에 대한 오해와 혼란이 야기되지 않도록, 회의에서 <결의된 내용>을 각 <지 교회>에 내려 보내는 편지로 작성해, 바울과 바나바로 하여금 먼저 가장 큰 <이방인 교회>인 <안디옥 교회>에 전달하게 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이 편지전달을 위해 안디옥으로 귀환을 했고, 이로써 그들의 전도여행도 끝났습니다 (사도행전 15:1-35). 그들은 안디옥 교회에서 <교사의 직무>를 재개했습니다만, 1차 전도여행 때 세워진 <지 교회들>이 생각나, 그 교회들을 돌아보기 위한 <2차 전도여행>을 계획합니다. 그런데 바울과 바나바는 2차 전도여행을 위한 <팀 구성원>에 대한 의견대립으로 결별하고, 각각 다른 길로 떠나버립니다. <의견대립의 원인>은 바나바의 생질(누이의 아들)인 <마가> 때문이었습니다. 마가는 1차 전도여행 때 함께 떠난 전도단의 멤버였었는데, <전도사역의 효용성>에 회의를 품은 그는 <밤빌리아>에서 그들 일행과 결별한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버렸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 때의 일로 그에게 많이 화가 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마가가 2차 전도여행 때 다시 따라 나서려고 한 것입니다. 심성이 착한 바나바는 그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고 싶었지만, 단호하고 엄격했던 바울 사도는 단호히 거부했습니다. 바나바가 그의 생질이기도 한 마가를 포기하려고 하지 않았기에, 그들은 마가의 일로 크게 다툰 후 결별 하기에 이르렀고, 결국은 제각기 따로 전도단을 구성해서 떠났습니다. 이때 바나바는 그의 조카 마가를 데리고 그의 고향 <구브로>로 향해 떠났습니다. 구브로를 <헬라어>로 <쿠프로스(κύπρος)>라고 하는데 이 단어의 뜻은 <구리>입니다. 구리가 많이 생산되기에 붙여진 이름이었습니다. 구리를 의미하는 독일어의 <쿠퍼(Kupper)>, 영어의 <코퍼(Copper) >는 헬라어 <쿠프로스>에서 유래했습니다. 이 구브로가 지금의 <키프러스(Cyprus)>입니다. 그들은 단지 그들의 <의견차이>로 <결별>했지만, 하나님께는 이미 그들 각자를 위한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3. <바울>과 <바나바>의 <결별의 결과>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 하심이니라!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느니라! (로마서 8:27-28)“ 비록 1차 전도여행으로 유명해진 바울과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바나바의 배려로 2차 전도여행에 합류 한 젊은 마가는 바나바의 감화력과 가르침을 통해 훌륭한 <복음전도자>로 성장하였는데, <신약성경> 최초의 복음서인 <마가복음>은 바로 그가 기록한 책입니다. 그가 <하나님 나라의 일>을 위해서 얼마나 위대한 역할을 했는가를 알게 하는 대목입니다. 마태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은 그 후 다른 기록자들이 이 마가복음을 근거로 <상호보완>해 기록한 복음서들입니다. 후일 사도 바울은 그가 그토록 냉정하게 거부했던 마가를 다시 보고 싶어 합니다. <로마의 감옥>에서 <순교>하기 직전이었습니다. 뒤늦게 그의 가치와 공로를 인정해준 것이었습니다.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너는 올 때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데살로니가후서 4:11)“ 그가 그의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이제라도 그와 함께 다시 복음을 전하고 싶다는 그의 소원을 알린 것입니다. 열정만 앞섰지 다듬어지지 못한 마가를 이처럼 훌륭하게 성장시킨 것은, 다름아닌 바나바 의 <사랑과 인내>였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현재의 모습으로 한 인생을 평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얼마든지 나아질 수 있습니다. 기다림과, 인내와, 사랑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충성된 <하나님의 일꾼>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바나바와 결별한 바울 사도는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 가운데 한 사람인 <실라(Silas)>를 2차 전도 여행의 동역자로 선택했습니다. 바울 사도가 율법과 할례 문제로 예루살렘을 방문하게 되었을 때, 그와 교제한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실라>는 헬라어에 능통한 사람이었고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바울 사도의 실라와의 사역은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원래 <소아시아 교회들>을 다시 방문하고 싶어했지만, 성령께서는 도중에 소아시아로 향하 는 그들의 길을 막으시고, 그들이 유럽의 관문인 <마게도냐>로 건너가게 하셨습니다(사도행전 16:6-10). <마게도냐>에서 첫번 째로 당도한 성이 <빌립보>였는데, 이곳에서의 <실라>의 역할은 아주 유용했습 니다. 첫째는 그가 마게도냐의 언어인 <헬라어>에 능했기 때문이요, 둘째는 로마황제에게 충성했던 로마의 <퇴역군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빌립보의 주민들>에게는 <식민지 거주지>임에도 불구하고 <로마의 시민권>이 부여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실라는 언어와 신분 상으로 그들과 대등하였기 때문에 그들에게 거리낌없이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실라는 여러 면에서 <유럽 선교>에 매우 적절했습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였습니다(로마서 8:27-28) 4. <인간의 의지> 가운데 <동역(同役)>하시는 하나님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칭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사도행전 13:48)“ <신학용어(神學用語)> 가운데 <컨커런스(concurence)>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동류(同流)>라는 뜻인데 '서로 돕다‘, '협력하다‘를 의미하는 <concur>의 명사형입니다. 이 <동류(concurence)>는 <하나님의 의지>가 <사람의 의지>와 함께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하나님의 의지>가 <사람에게 작용>되어, 사람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이루어 드리는 것입니다. <바울과 바나바의 결별>에는 당시 본인들이 깨닫지는 못했으나 실제로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의지>가 <작용>하고 있었습니다. 한 예를 들겠습니다. <달라스 신학교>가 지금은 미국에서 잘 알려진 신학교이지만 1924년경만 해도 이 학교는 빚 때문에 <폐교>의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학교를 설립한 <루이스 박사>와 그의 동역자들은 낙심하지 않고, 다 함께 기도실에 들어가 무릎을 꿇고, 이 문제를 가지고 합심하여 하나님께 기도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쉐퍼 박사> 바로 옆에서 기도하든 <아이언사이드>라는 유명한 신학자가 문뜩 이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주여 당신은 모든 산과, 모든 언덕과, 그리고 모든 가축들을 소유하고 계시는 부자가 아닙니까? 그 가축들 중에서 얼마를 팔아서 그 돈을 우리에게 보내주시고, 우리가 그 돈으로 이 학교의 빚을 다 갚고, 계속하여 학생들을 양육할 수 있게 도와 주시옵소서! “ 이런 기도를 하고 있는 동안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달라스 카우보이의 모자와 구두를 신은 어떤 사람이 사무실에 들어오더니, 사무실 여직원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달라스의 카우보이입니다. 저는 오늘 마차 두 대에 가축을 가득 싣고 가서 다 팔았습니다. 저는 원래 이 돈을 다른데 투자할 생각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제 마음 속에 이 돈을 좀더 보람 있는 일에 써야 한다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이 돈을 이 신학교에 기부하기로 결심했으니 받아 주십시요! “ 사무실 여자 직원은 그 돈을 받아 가지고 즉시로 학장실로 달려갔습니다. 그랬더니 막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 여직원으로부터 <수표>를 받아든 <쉐퍼 박사>는 <아이언사이드 박사>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습니다. „목사님 주님께서 방금 가축을 팔아서 이 수표로 보내주셨습니다! “ 무슨 뜻입니까? 이 목장주인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어 드렸던 것입니다. 바로 달라스 신학교의 문제해결을 원하시는 <하나님의 의지>가 이 <목장주의 의지>에 그대로 <작용> 한 결과입니다. 신자인 우리는 자나깨나 하나님의 영인 <성령>에 붙들림 받아야 하고, <성령>이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위>를 지배하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영으로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위를 당신의 <선한 도구로 사용>하시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의지>로 <동역(同役)>해주시는 축복된 신자의 <신앙고백>이 있습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 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다! (고린도전서 15:10)“ <아멘! >
    • 종교
    2023-02-09
  • [오늘의 말씀] 하나님의 리콜운동 대표 전두승 목사 “’후포스타시스’ – 실상과 증거를 가진 믿음”
    [성경/365산업경제뉴스DB] 2005년 5월 31일 새벽 3시 하나님께서 나를 깨우시고 벽시계로부터 흡사 레이저 광선처럼 내 이마 한 중앙에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는 말씀을 쏘아주셨다. 한 달 후에 이번에는 오른쪽 옆구리에 영어로 ‘Faith Test’- 믿음 시험이라는 음성이 쑥 찔러졌다. 결국 성령받은 지 33년 동안 광야를 벗어나지 못해 힘들어 했던 세월이 믿음 시험을 통과하지 못해서 그러했던 것을 알게 하셨고, 이제부터 믿음 시험을 하시겠다는 말씀이셨던 것이다. 그 이후부터 지속적으로 들려온 음성에 말할 수 없는 어려움 속에서도 순종하며 댓가를 치르는 희생을 감내하며 이번 5월이면 만 18년이 되는 믿음과 순종과 희생의 과정을 포기하지 않고 믿음의 최종관문인 지금의 오래참음과 인내의 자리까지 따라올 수 있게 하셨다. 그리고 그 오래 참음, 인내의 결과는 이제 약속을 받고 누리는 것이다. “저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히 6:15). 처음에 보여주신 천 개의 퍼즐이 맞혀져 그림이 완성되듯이, 믿음-순종-희생-인내의 긴 연단의 터널을 통과하여 이제 약속의 땅의 풍성한 열매를 누리게 하시는 것이다. 무엇보다 “네가 믿으면” 하고 약속하신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볼 것이라”는 것이다. 영광은 하나님의 임재로서 그의 존귀와 위엄과 능력을 보는 것이며, 풍부함과 풍성한 재정의 약속도 포함된 것이다. 그동안의 기름부으심을 넘어 이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나라들이 그의 영광을 보게 될 영광의 부흥을 위한 통로로 사용하시기 위해서이다. 이를 위해 그동안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미리 말씀하시면, 그것이 하나님께서 예언적 계시로 그가 하실 일을 말씀하신 것임을 알게 되어 믿고 선포하면 현실가운데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수없이 경험하였으며, 하리운에 오래 같이 해 온 분들에게는 그것을 눈으로 보게 하셨다. 그것이 이번 소드 3년차 ‘조명된 혼과 감취인 것” 질문의 답에 나오는 것과 같이 개인적 예언에 비추어 참된 예언은 하나님의 때에 그가 하실 일을 알리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번 집회에 나가면 이런 일이 있을 것이다”라고 2주 전, 혹은 1주 전 말씀하셔서 그 일이 일어나는 것을 여러 번 보게 하셨고, 그래서 그 이후부터는 “이번에 나가면 어떤 일이 있을까요?” 하며 묻고 기대하는 습관이 생겼는데, 다음으로 묻지 않아도 주님께서 하실 일을 알려주시는 일이 패턴화 된 실상과 증거들을 가지게 되었다. 그것은 나만 아니라 아내에게도 매 번 같이 그렇게 하셨다. 처음에는 “주님이 어떤 일을 행하실 것인지 알려 주세요” 하고 응답을 받았는데, 요즈음은 그렇게 기도하지 않고 있어도 주님께서 하실 일을 말씀해 주시는 것이다. 체험적으로 알게 된 것은 내가 생각치도 않았고 구하지도 않았으며 어떤 선입견도 가진 것이 없었는데 어떤 일을 주님이 보여 주시거나 말씀하시는 것은 100% 주님이 하실 일을 미리 알려 주시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네가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한다”는 음성을 듣고 난 후에 하나님의 리콜운동은 내 일이 아니라 주님의 일이신 것에 대한 확신을 가진 후부터 그러한 패턴이 시작된 것이다. 이번에 가면 “불이 있을 것이다. 통곡이 있을 것이다” 하셨을 때, 나가기 전에 미리 글로 선포하면 그런 일들이 한 번도 빠짐없이 일어났다. 코비드 19이 기승을 부려 나가려고 생각지도 않았을 때인 2020년 5월 “이번에 나가면 만날 사람이 있다” 하신 그 만남을 통해 그 결과를 이제 보기 시작하고 있고, 아내에게 그해 11월 “이번에 20명이 들어올 것이다” 하신 집회 전 정확히 20명이 들어오고 난 후, 핸폰이 깨어져 연락을 더 못받게 하셨으며, 그후 “더 들어올 것이다” 하신 대로 집회 중 기간과 이후에 지속적으로 들어오게 하신 것 등, 수없는 확증을 가지고 있다. 그때 처음 참석한 두 분에게 “’강력한 무기가 될 것이다’라고 하십니다”하고 예언하였는데, 2년이 지난 지금 그렇게 강력하게 된 모습을 보게 되었으니 말이다. 오늘 목요일 소드 3년차에 다룰 초대교회가 가르친 믿음의 헬라어 원어 중 ‘후포스타시스’ 믿음인 것이다. “‘후포스타시스(υποστασις)’란 ‘미래에 이뤄질 일을 예감하고 여는 힘’을 뜻한다. 믿음은 ‘실상과 증거’를 소유하게 함으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해 의심없이 믿게 한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를 믿은 자들에게는 앞으로 하실 일에 대해서도 미리 알려 주시므로 다른 사람들보다 앞서 하나님이 하실 일에 대해 준비되어 있고, 또 그 일을 다른 사람들에게 믿음으로 선포하게 하심으로 그 일의 선두주자가 되게 하신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미리 알리시는 것이다. 아모스 3:7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보이지 아니하시고서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그런 주님께서 어제 새벽에 아내가 샌프란시스코에 계신 사업하는 한 여집사님에게서 그 전날 전화로 사업체 매각을 위해 기도 부탁을 해와 기도하고 있는데, 생각하지도 않은 하리운 밴드에 500명이 있는 것을 보여 주셨다는 것이다. 그것도 어제 에베드 전도사님이 이미 밴드에 있는데 무슨 일인지 “가입시켜 주세요” 하는 글이 올라와 가입시켜 준 일을 이야기 하였더니 그런 말을 하는 것이었다. 오래 전에 “전화하고 올 사람이 천 명이다” 하셨고, 이번 천 명 여자 목사들을 시작으로 이전부터 “30명이 준비되면 군대가 온다, 2천, 4천이 온다. 풍성한 재정이 올 것이다”의 실현인 것이다. ***보고 믿는 자들은 복되다. 보지 않고 믿는 자들은 더 복되다. 그들은 열매를 누리는 선두주자들이 될 것이다. 그러나 듣고도 보고도 믿지 못하는 자들은 아직 눈에 비늘이 벗겨지지 않아서, 수건이 얼굴을 가려서이다. 아직 자아가 굴복되지 않았고 주님과 진리보다, 주님이 하시는 일보다, 자기가, 자기가 원하는 것과 자기 일과 사역이 더 중요하기에 그런 것이다. 중간에 포기한 사람들이 한결같이 ‘바빠서, 일이 많아서, 사역을 위해서’라는 이유를 말하는 것을 들으며, 과연 하나님의 일을 두고 무엇이 바쁘다는 말인가 라는 생각을 하면서 ‘다는 아니다 그래서 구분된다 하신 것이다’라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 “이것을 네가 믿느냐? 믿는 자가 복이 있다” 하셨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히 11:1)라고 하셨다. 그동안 1년 넘게 하리운에 몸담은 분들은 막연히 바라는 그런 믿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수많은 실상과 증거를 가지고 있다. 믿지 못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고 이제 그 믿음의 확신에 이른 것이다. “믿는 자는 하나님의 영광을 본다” 하셨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하나님이 행하시는 것을 보고 이제 놀라게 될 것이다. 그것은 하리운 사역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을 넘어서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할 시대적/전국적/세계적 부흥의 영광의 통로로 삼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한다!” “내 일처럼, 내 가정 일처럼, 내 사업하는 것 처럼 하라”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요 11:40). 믿는 대로, 순종하고 행동하는 대로 순번이 정해지고 있다. 땡큐 로드. 크신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드립니다.
    • 종교
    2023-02-08
  • [오늘의 말씀] 아나돗교회 정이신 목사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요한계시록 21:1∼4)"
    [성경 / 365산업경제뉴스 DB] [1] <요한계시록>을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의는 주님의 속성일 뿐 아니라, 인류를 새롭게 하는 힘입니다. 그래서 인간에게 이걸 본받으라는 면도 있지만, 인간이 바르게 살도록 이끄는 능력의 원천도 됩니다. 하나님의 의가 인간을 바르게 살도록 이끌고, 기독교의 종말적 소망을 만듭니다. 이게 표현된 게 <1∼5절>인데, 이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로 다가가는 게 아니라, 그 나라가 우리에게 내려온다고 합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의 죄악을 바로잡아 회복시킬 수 있는 능력이 그 안에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크리스천은 늘 그 나라를 기다립니다. [2] 종말에 나타날 새 하늘과 새 땅은 크리스천 개개인을 회복시키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마지막 날에 도래할 하늘나라에 있는 영광 안에서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질서가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동안 죄의 포로 상태로 지냈던 인간의 기억을 말끔하게 지웁니다. 하나님은 처음 작정하셨던 인류 역사를 부활의 몸을 입은 인간에게 보이시는데, 이를 위해 새롭게 된 만물이 등장합니다. 이런 면에서 <요한계시록>은 인류의 종말ㆍ심판만 이야기한 게 아니라, 죄의 포로로 살았던 성도를 새 창조로 의롭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도 같이 말합니다(고린도후서 5:17). 바울이 ‘하나님의 의’에 관해 천명한 <로마서>에는 이런 말씀이 많이 나오지만, 요한이 이 책을 썼던 때의 상황은 바울과 달랐기에 이 책은 이런 말씀을 드러내서 표현하지 않고 안으로 숨긴 채 상징적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책을 읽을 때는 하나님의 의에 얽힌 상징적 표현들을 찾아서 서로 비교하며 읽어야 합니다. 그래야 신약성경에 있는 다른 책과 이 책이 조화를 이룹니다. [3] <요한계시록>의 전체적 흐름에서 <21∼22장>은 천국(天國: 하늘나라)으로 번역한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만 보여준 게 아닙니다. <20장>까지 인내와 믿음의 길을 걸어왔던 성도에게 이들이 예수님 안에서 받게 될 보상에 대해 알려준 게 이곳입니다. 무신론자들은 인간에 관한 문제를 인간이 풀어낼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타락해 만물보다 더 거짓되고 썩은 게 사람의 마음이기에(예레미야서 17:9) 성경은 이게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또 타락한 인간으로 인해 고통을 같이 받은 만물도 회복된 하나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신음하며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로마서 8:19∼22). 이런 종합적인 회복은 삼위일체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기에 만물의 최종적인 회복은 하나님이 이끌어가십니다. [4] <21∼22장>에 나온 새 창조와 새 예루살렘에 관한 말씀은 편집 순서에 따라 <20장> 이후에 등장한 게 아닙니다. <11:15∼17>에 일곱 번째 천사가 불었던 나팔소리와 함께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맛보기 말씀이 먼저 나왔습니다. 요한은 <11:15∼17>에서 예고편으로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에 관해 간략한 그림을 보여줬고, <21∼22장>에서 그 나라를 구체적으로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초대교회 성도에게 예수님의 강림을 간절히 바라는 신앙생활을 하라고 권면했습니다. 따라서 이 책의 구성이 말하는 메시지를 보면 무천년설의 해석이 전체적인 흐름에 더 맞습니다. [5] 저는 <5절>을 근거로 <1절>을 읽으라고 권합니다. <1절>은 요한이 본 환상을 기록한 것이고, <5절>은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신 것이기에 이렇게 하라고 권합니다. 하나님이 만물을 새롭게 하신 정도가 완전ㆍ완벽해서 처음에 만드신 하늘ㆍ땅이 사라져버린 것과 같은 모습을 띠게 될 걸 그가 환상으로 보고 쓴 게 <1절>인데, <5절>에 따르면 처음 하늘ㆍ땅은 그대로 있습니다. 그 하늘ㆍ땅이 하나님에 의해 완전히 새롭게 된 모습으로 그에게 보였는데, 그는 이걸 하늘ㆍ땅이 사라져버린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또 <1∼5절>을 헬라어로 보면 새 창조는 만물을 다시 만드는 게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걸 갱신하는 면이 더 강합니다. 그러나 <20장>의 구성이 그렇다고 해도 이 말씀을 100% 갱신이라고 이해하면 안 됩니다. <요한복음>에 의하면 재창조ㆍ대종말의 가능성은 여전히 있습니다(요한복음 5:24∼25). 따라서 이 말씀을 갱신으로 이해해도 재창조의 입장을 수용하는 게 좋습니다. [6] <1∼8절>은 <1∼5절>과 <6∼8절>로 나눌 수 있는데, 창조 이후 이뤄 오던 하나님의 구속 역사가 최고의 정점에 이르는 순간을 묘사한 것으로 전체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룹니다. 이 조화를 이루는 주체가 옛 질서로부터 새 질서로의 변화를 의미하는 우주의 갱신(재창조), 변화한 세계의 주인으로서 새 예루살렘, 예수님의 신부인 교회입니다. 이 셋이 조화를 이루며 <요한계시록>의 앞부분에서 말했던 하나님의 언약을 성취합니다. 그래서 이 단락의 끝부분에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성취를 말했습니다(7∼8절). 이는 하나님의 언약이 반드시 성취될 것이니 앞으로 이렇게 살라고 초대교회 성도를 권면한 것입니다. 또 <1∼5절>을 헬라어로 보면 [ABC-D-C'B'A']의 교차 대구법인데, 중심부(D)에 있는 게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에 대한 말씀입니다(2∼3절). 이를 보면 <요한계시록>에 나온 새 창조의 순서는 <창세기>에 있는 첫 창조의 패턴을 그대로 따른 것입니다. 새 창조를 통해 첫 창조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이 이뤄져야 하기에, 요한은 <창세기>의 구성을 의식해 <21∼22장>을 기록했습니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은 5일 동안 인간의 거처인 우주를, 6일째에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이처럼 <1∼5절>에서도 하나님은 우주를 먼저 새롭게 하셨고 그 뒤 새롭게 된 주님의 교회가 등장합니다. [7] 요한은 “바다가 없어졌다”라고 했습니다(1절). 여기서 “바다”는 우리가 보는 바다가 아니라 <13장>에 나온 것처럼 짐승이 나오는 악의 근원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악의 근원을 있게 한 바다가 새롭게 창조된 세계에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바다가 없어졌습니다. 이어 하나님의 복을 누리게 될 예수님의 신부이자 새 예루살렘인 교회가 등장합니다. 예수님의 신부ㆍ거룩한 도성ㆍ새 예루살렘 모티브는 <요한계시록>에 다섯 번 나옵니다(3:12; 11:2; 19:7∼9; 20:9; 21:2). 이 모티브가 나온 과정을 보면 교회는 원형이 하늘에 있지만, 땅에서는 사탄에게 공격을 받습니다. 이처럼 해 아래 세상에서 교회는 하나님이 허용하신 성화를 거치면서 가장 완벽한 존재인 예수님의 신부로 변화되고 이를 통해 새 창조를 준비합니다(2∼3절). [8] 성경에서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에 대해 비유로 표현한 결혼생활의 특징은 결혼식을 올리고 새로운 가구를 사며 신혼여행을 떠나는 게 아닙니다. 성경에서 말한 결혼생활의 핵심은 사랑하는 사람과 떨어지지 않고 함께 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계속 인격적인 만남을 유지하며 사는 게 성경에서 말한 결혼생활의 특징입니다. 그 나라는 인류를 창조하신 하나님과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 그리고 성령님과 성도의 인격적 만남이 영원히 이어지는 곳입니다. 예수님의 강림을 사모하며 기다린 사람들이 누릴 최고의 보상이 삼위일체 하나님이기에 성도에게 하나님과 영원히 만나는 보상이 주어지는 곳이 그 나라입니다. [9] 혼인 잔치를 치르기 위해 교회는 예수님의 신부로서 하나님으로부터, 하늘나라에서 새 창조의 주인이 되기 위해 내려온 새 예루살렘과 완전히 연합합니다(3절). 이제 삼위일체 하나님이 성전이 돼서 교회와 영원토록 함께 하십니다(21:22). <3절a>에서 하나님과 함께 있는 사람들은 <3절b>와 달리 복수인데, 이는 <7:9>에 나오는 구속받은 백성을 염두에 둔 표현입니다. <7:9>에서 144,000명은 셀 수 없을 만큼 큰 무리인데, 이들에게 삼위일체 하나님이 임재했습니다. 이들을 반영해 하나님과 함께 있는 사람을 복수로 표현했는데, 이는 예수님이 성령님의 강림 대상을 복수로 지칭하신 말씀과 같은 맥락입니다(요한복음 14:26; 16:7). <요한복음>은 이런 사건을 구체적으로, 이 책은 상징적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렇지만 두 책에서 지향하는 바는 같습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님의 강림은 공동체 단위로 일어나고 개인에게 몰래 일어나지 않습니다.
    • 종교
    2023-02-04
  • [오늘의 말씀] 하나님의 리콜운동 대표 전두승 목사 “격려하고 들어주고 위로해 주라”
    [365사업경제뉴스DB] 오늘 이곳 토요일 새벽에 “마음에는 안들고 그것 밖에 못하나?” 생각하지 말고, 그 수준에서는 잘한다고 칭찬해 주라. 그래서 다음 단계로 올라가도록 하라 하셨다. 어렸을 때 부모들이나 어른들이 자기들의 마음에 차지 않으니까 “그 정도 밖에 못하나? 그러려면 그만 두라”는 말을 들은 경우가 많을 것이다. 좋은 교사는 같은 연령대라도 다 발달 정도가 다르니 잘하는 학생과 비교하지 말고, 지금 있는 수준에서 잘하고 있다고 격려해 주어 더 나은 성적으로 올라가도록 격려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그래서 초등학교 저학년 때 일기장이나 숙제 검사에 웃는 그림과 함께 “참 잘했아요” 도장을 찍어주는 것을 볼 수 있다. 칭찬하면 좀 부족해도 더 잘할 수 있게 되고, 격려는 가능성을 더욱 끌어내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나온 것이다. 잠언 27:21은 “도가니로 은을 폴무로 금을 칭찬으로 사람을 시련하느니라”고 하였다. 여기의 시련은 더욱 단단하게 하는 단련, 그리고 성장하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그 수준에서 잘한다 칭찬하여 다음 단계로 올라가도록, 성장하도록 하라고 하신 것이다. 또 우리 하리운 회원 한 분을 보여 주시면서 어려웠던 때에 대해 들어주고 공감해 주고 격려해 주라. 치료해 주라. 지금 현재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앞으로도 하나님이 아름답게 하실 것에 대한 믿음과 소망을 가지고 있지만,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지난 날에 대한 기억의 깊은 내면 속에 남아 있는 과거 상처의 완전한 치유를 위해 들어주고 위로해 주고 치료해 주라고 하셨다. 내적치유 훈련과정을 가르치기도 하고 과정을 끝내기도 하였지만, 같이 모여 있어 치유를 위한 실제 사역은 하지 못하였기에, 이론은 알지만 아직 치유받지 못한 감정 치유와 참된 용서를 통한 자유함을 얻도록 도움을 주라 하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론으로는 배웠고 또한 “회개했다, 용서했다, 내적치유를 많이 받아 봤다” 하면서도 아직도 그 기억이 지워지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그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고백이 실제 믿음이 되기 전에는 참된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무엇인가가 아직까지 자신을 붙잡고 있다는 감정을 떨쳐 버리기가 힘들기 때문인 것이다. 요셉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대한 하나님의 궁극적 부르심과 사명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형들에게 미움을 사 종으로 팔려가고, 오해를 받아 감옥에 갇히는 시련 속에서도 불평과 원망 없이 인내하다가 애굽의 총리대신이 된 후에 형들에게 “하나님이 이 모든 고난 속에 자신과 함께 하셨으며 해를 선으로 바꾸셨다” 고백하며 형들과 그들의 자손들을 후대한 것이다. 지난날의 쓰라린 아픔과 고난까지도 하나님의 섭리였고, 그의 뜻을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허락하심 가운데 일어난 일이라는 것을 안 것이었다. 내적치유는 상한 마음의 치유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름부으심을 주셔서 치유하시고 우리의 뿔(권세)을 높이셔서 여호와의 제사장이요 하나님의 봉사자(사 61:6)로 쓰시기 원하신다. 주의 행사(하시는 일)를 기뻐하며 그것으로 인하여 주를 높이게 하시기 위함이다. 우리가 기름부으심을 받아야 할 목적이 여기에 있다. 이사야 61:1-3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 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사 61:1-2). 시편 92:4 “여호와여 주의 행사로 나를 기쁘게 하셨으니 주의 손의 행사를 인하여 내가 높이 부르리이다.” 시편 92:10 “그러나 주께서 내 뿔을 들소의 뿔같이 높이셨으며 내게 신선한 기름으로 부으셨나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자라는 삶의 목적과 사명을 알도록 치유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 종교
    2023-02-03

실시간 종교 기사

  • 다니엘미션미니스트리 오준섭 선교사, '우리는 이미 무언가 이루어 낸 사람입니다!'
    1. 잘못 던진 야구공들이 머릿속을 떠나지를 않습니다. 왜 그렇게 던졌지 하는 생각이 마음을 영 불편하게 했고 그래서 더 열심히 연습했지만 성적은 오르지 않았습니다. 결국 벗어나기 힘든 슬럼프에 빠졌습니다. 잘못 던진 공들과 나 때문에 패배한 경기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습니다. 2. 더 이상 컨트롤할 수 없는 야구공과 지친 몸을 이끌고 찾아 간 곳은 정신 병원이었습니다. 지치고 나락에 빠진 저에게 의사가 내린 처방은 특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의사는 동영상을 하나 건네며 “이것을 꼭 보세요.” 라고 말했습니다. 3. 그 영상은 제가 완벽하게 공을 잘 던진 과거 경기들로 구성된 2분짜리 짧은 동영상 이었습니다. 저는 그 동영상을 몇 번이고 돌려 보았습니다. 그러자 그 뒤로부터 저는 경기 도중 실수 했을 때 제가 자신감에 차 있던 저의 경기들이 떠올랐고 그 때의 자신감이 다시금 저의 마음속에 끓어올랐습니다. 이렇게 저는 슬럼프를 극복해 냈습니다. 4. 이것 방법이 바로 미국 애틀랜타 최고의 투수인 존 스몰츠가 슬럼프를 극복한 방법입니다. 슬럼프를 극복한 그는 인생 최고의 공을 던지며 메이저 리그 명예의 전당에 오르게 됩니다. 실수가 반복될 때… 남들이 나를 질책할 때…. 다른 사람과 내가 비교될 때… 쉴 새 없이 목표를 향해 달리다 지칠 때…. 우리의 일상에서도 슬럼프는 찾아오게 마련입니다. 5. 그때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수많은 실패와 좌절 그리고 그 실수 속에서도 분명 우리에게 성취의 순간과 자신감으로 넘치던 순간이 있었음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6. 우리는 이미 무언가를 이루어 낸 사람들입니다. 한 번 떠올려보세요. 부모님께 칭찬받고 기뻐하던 순간을…. 어릴 적 친구들과 동네 축구하다 우연히 걷어 찬 공이 골대로 멋지게 빨려 들어간 순간을… 선생님의 부름에 떨리는 마음으로 칠판에 나가 답을 적어 친구들에게 박수를 받던 순간을… 원하던 대학이나 회사에 들어갔던 화려한 순간들... 등등 7. 그때의 그 순간을 기억하며, 슬럼프를 향해 힘껏 공을 던지세요. 여러분의 슬럼프 또한 깨지고 말 것입니다 8. 마음을 다 잡아 결심하고 결단했던 마음은 허물어져 가고 무언가 이루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고 느껴져 지쳐갈 때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자신감 넘치게 환호했던 성취의 순간들입니다. 9. 가장 잘 나갔던 인생의 그 순간을 떠 올리며 슬럼프를 극복하기 바랍니다. 아직 이루어야 할 일들이 많은데 슬럼프라는 불청객에게 눌려 주저앉을 수는 없습니다. 다시 일어 서야합니다. 10. 성경도 중언하고 있습니다.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지느니라(잠언 24:16) 11. 나도 모르게 슬그머니 찾아와 자리를 차지하고 주인 행세 하려는 슬럼프를 극복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다시 일어나 예수님이 주신 사명과 승리를 향해 정진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 종교
    2021-11-24
  • 수원 우리가꿈꾸는교회 김병완 목사, '잘지내고 있어요?'
    당신이 거기 있음을 기억해내는 것. 사랑의 또 다른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이따금씩 누군가 생각날 때가 있습니다. 이따금 누군가의 처지가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그냥, 지나칠 수 있는데 그렇게 지나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하는 생각에 지나치지 못하고 번거로움을 무릅씁니다. “잘 지내고 있어요?” 그렇게 제가 누군가의 안부를 묻는다면 그건 그저 지나칠 수 없어서, 스치는 생각의 꼬리를 부여잡고 젖먹는 힘까지 다해 겨우 노크를 했다는 의미 입니다. “당신이 ‘거기에’ 있다는 것을 제가 기억하고 있습니다.” 학창 시절, 저는 외로움이 많았습니다. 친한 친구들 사이에서도, 북적 거리는 곳 한 가운데에서도 제 마음에는 이상하게 누군가 따스한 손 길로 관심을 표현해주길 기대했습니다. 그래서 이어폰을 꽂고 먼 하늘을 바라보며, 나 외롭지 않다는 것을, 나는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잠시 음악을 듣는 중이라는 것을 최대한 표현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것인지, 그런 사람들이 눈에 띕니다. 나도 자연스럽지 않은데, 말 주변도 없는 사람이 안부를 묻습니다. “잘 지내고 있어요?” 몇 번의 어색한 대화를 끝내면, 서툴었던 대화에, 어색했던 공기에 살짝 민망해지기도 하지만 그렇게라도 과거의 나에게 말을 걸어 당신의 존재를 내 서툰 인삿말로 인정합니다. “당신이 ‘거기에’ 있음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안부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 입니다. 함께 안부 물으며 살아요. “잘 지내고 있어요?”
    • 종교
    2021-11-24
  • 브엘라해로이 미니스트리 박길웅 대표, '생각하라'
    “생각하라”(베드로후서 1장 12-21절)1.오늘 본문에서 베드로는 자신의 편지를 읽고 있는 자들을 향하여 생각하고 또 생각하라고 권면한다. 여기서 생각하라는 말은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말하기 보다는 이미 배우고 알고 있는 것들을 다시 한 번 상기하는 것을 의미한다.2.상기해보라는 이 말을 ESV에서는 remind. 즉, 마음에 다시 한 번 새겨보라는 의미로 적절하게 번역해 놓았다. 그렇다면 베드로는 도대체 무엇을 그렇게 생각해보고 다시 마음에 새겨보라고 여러차례 강조했던 것일까?3.16절에 보면 크게 두 가지로 내용을 압축해볼 수 있다. 먼저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다. 그리스도의 능력은 무엇인가? 눈먼 자의 눈을 뜨게하고, 말 못하는 자의 입을 여는 것? 그것은 지극히 단순하고 일차원적인 능력이다.4.그리스도의 참된 능력은 지극히 높은 곳에서 가장 큰 영광을 받으시는 그가 낮고 천한 이 땅으로 오심으로 영원히 죽어야 할 죄인들을 그의 생명으로 대신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구원을 얻도록 하신 십자가에서 찾을 수 있다.5.둘째로 주의 강림하심을 상기하고 되새겨야 한다. 주께서 이 땅에서 사시는 동안 이루신 구원이 완성되어지는 그 날. 즉,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시는 그 날에 대한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함을 기억해야 한다.6.바울은 만일 우리의 삶이 이 땅에서만 그친다면 우리의 인생이야 말로 가장 비참하고 비극적인 삶이라 말하였다. 그의 말대로 우리의 인생은 이 땅에서 끝이 아니라 죽어야 새롭게 시작되는 하늘나라의 삶이 있다. 오히려 이 땅에서의 짧은 백년의 인생시간과 견줄 수 없는 영원한 시간이 준비되어 있다.7.베드로가 이렇게 확신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이 직접 눈으로 보고 몸으로 체험했기 때문이다. 직접 경험한 자보다 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가? 그럴 수 없다. 마지막 날이 다가올수록 거짓과 헛된 속임수로 우리의 신앙의 근간을 흔드는 교묘한 가르침들 앞에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붙들어 ‘생각하고’, 다시 한 번 상기(remind)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종교
    2021-02-23
  • 새생명교회 조태성 목사, '성령님과 친밀하게 교제하는 방법'
    * 성령님과 친밀하게 동행하는 방법 1. 거제도에서 장로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오산리 기도원에서 앞으로 은퇴 이후의 삶을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과 인도하심이 어디에 있는지 집중해보고자 금식하셨는데 갑자기 제 생각이 나셨답니다. 장로님은 이전에 양평 금식기도원 서점에서 제게 집필하게 하신 성령님에 대한 책들을 구입하시고 큰 은혜를 받으셨습니다. 계속 반복해서 읽고 계시며, 송구하게도 선물도 많이 하신다고 합니다. 함께 식사하고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분의 질문은 이것입니다.2. “목사님, 제가 어떻게 하면 성령님의 임재를 느끼며 놓치지 않을 수 있을까요?”저는 느낌이 아니라 믿음으로 성령님과 동행하는 부분을 설명해드렸습니다. 느낌을 종종 허락하시지만 느낌에 집착하다가 이미 동행하시는 성령님의 친밀하심을 거절하는 일이 있지 않도록 설명해드렸습니다. 들으시고는 다시 여쭤보십니다.“그러면 성령님과 친밀하게 동행하는 삶을 살려면 어떤 좋은 방법들이 있는지 가르쳐주세요.”3. 저는 즉각적으로 성령님께 마음속으로 도우심을 구했습니다. 제 안에 부어주시는 감동들과, 떠오르며 평소 정리되어 있던 내용들을 설명해드렸습니다. 지금 여러분과도 나누고 싶은 방법들입니다. 우선 성령님과 이야기 나누는 비밀 노트를 만들어 보십시오.영성일기와 비슷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거창한 무엇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니 부담 갖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는 이런 전용 노트를 15권정도 가지고 있습니다. 작년부터는 교회에 노트를 비치해두고 그 노트를 사용하여 성령님과 교제나누기 시작했습니다. 4. 아무 때나 써도 되지만 시간을 정해서 규칙적으로 하다보면 친밀하게 동행하는 삶에 유익하고 거룩한 습관이 됩니다.저는 예전에 점심 식사 후 사무실에 들어오면 10분에서 20분 정도를 곁에 계신 성령님과 노트에 기록하며 교제를 누립니다. 성급하게 펜을 들지 않습니다. 일단 내 안에, 곁에 계신 성령님을 믿음으로 바라볼 수 있는지 제 마음을 점검합니다. 평안함과 안정감 가운데 내면의 고요함이 시작됩니다. 성령님을 느낌이 아니라 그냥 편하게 믿음으로 바라봅니다. 5. 그리고 친한 친구를 만나면 부담 없이 친근하게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처럼 그렇게 성령님께 감사나 사랑을 표현하며 기록합니다. 기쁨도 어려움도, 일상의 이야기들을 노트에 적습니다. 말로 표현해야 할 부분들을 노트에 편지처럼 그러나 현재적으로 써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조용해야 할 공간에서 말로 설명할 수 없으므로 종이에 써서 표현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그러면 언제 마무리 할까요? 아무 때나 상관없습니다. 노트로 이야기 나누는 것이 끝나면 이제는 또 다른 방법들로 계속 성령님과 교제 나눌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연약한 사람들이라서 종종 그분을 놓칩니다. 깜빡하고 잊어버리기 일쑤입니다.6. 그래서 추천해 드리고 싶은 교제의 다른 방법은 ‘이정표’입니다. 운전을 하다보면 도로에 다양한 종류의 표지판이 있습니다. 지금 위치와 다음 지역까지의 남은 거리, 방향, 도로 주의사항 등 정보를 제공합니다. 우리는 운전 중에 잠시 딴 생각을 하다가 엉뚱한 길로 가기도하고 잘못 된 길로 들어가기도 하며 곤욕을 치를 때가 있습니다. 이런 실수를 방지하도록 돕고자 이정표, 표지판이 있는 것이지요. 마찬가지로 우리는 성령님을 종종 잊어버리기에 자신만이 알아볼 수 있는 이정표를 준비하면 좋습니다.7. 제 첫 번째 이정표는 핸드폰이었습니다.“사랑합니다. 성령님.” 혹은 “어서오세요. 성령님.”이라는 문구를 써놓습니다. 지금은 스마트폰이라서 배경화면에 성령님과 관련된 성구나 사진 이미지를 적용해놓곤 합니다. 가끔은 제 손바닥이나 손등이 ‘이정표’가 됩니다. 글씨를 써서 다닌 적도 있거든요. 여러분이 주부라면 주방과 거실에 예쁜 이미지와 글씨로 “성령님, 함께 계심을 감사드립니다. 사랑합니다. 어서오세요.” 등의 문구나 성령님과 관련된 성구를 써 붙여놓는 것도 지혜입니다. 화장실 변기에 앉아서도 정면에 예쁘게 코팅해서 붙여놓으면 좀 민망하기는 하지만 도움이 될 것입니다. 8. 여러분 가정 곳곳에, 또 일하는 직장에서도 여러분만이 알아볼 수 있는 문구나 글귀로, 성구나 이미지로 ‘이정표’, ‘표지판’을 만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혹시 저처럼 다이어리를 사용하신다면 매일 첫 줄에 성령님을 초청하거나 존중해드리는 문구를 기록하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제가 아는 자매님은 십자가 반지를 사용했습니다.반지를 볼 때마다 마음속으로 성령님을 찾기로 결단했다고 하셨는데 참 감동이 되더라고요. 감동 있으신 분들은 시도해보시되 그 물건을 볼 때마다 성령님이 생각나면 성공입니다. 9. 그러나 매너리즘에 빠져서 효과가 약해질 때가 올 수 있습니다. 그러면 다른 이정표를 사용하되, 이정표 역할을 하는 것들을 절대로 우상화 하지 마시길 부탁드립니다. 장기적으로는 이정표가 없어도 성령님을 의식하고 존중해드리는 친밀한 삶을 누리는 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부디 성령님을 인격적으로 존중해드리는데 작으나마 도움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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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2-22
  • 예심교회 신아브라함 선교사,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하실 때에 내가 마음으로 주께 말하되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하였나이다 (시27:8)My heart says of you, "Seek his face!" Your face, LORD, I will seek. (Ps27:8)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그래서 사람의 육의 눈으로는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영의 눈을 뜨고 하나님을 찾으면 희미하게나마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하나님은 사람들에게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말씀하실 때가 있습니다.하나님께서는 때로는 우리에게 온 영혼을 집중하여 하나님의 얼굴을 찾도록 감동을 주십니다.오늘 특별히 그런 감동이 와서 주님의 얼굴을 찾아보았습니다. 선명하게 주님이 그려지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존재하고 계심이 느껴졌습니다.뭔가 신비에 가리어져 있었지만 나를 불 꽃 같은 눈으로 지켜보고 계시는 하나님이 보였습니다.하나님의 존전에 서는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조금만 더 가까이 가면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정말 짧은 시간이었지만 하나님께서 만나 주신다는 경외감과 행복감이 있었습니다.이종이 언제나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기를 원합니다.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사55:6)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암5:4)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골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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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2-22
  • Next 세대 Ministry 대표 김영한 목사, '사람은 참으로 무섭다.'
    사람은 참으로 무섭다. 자신이 살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그런데 때로 자기 자식도 혹사시키고, 죽이기도 한다. 헌신적으로 자식을 키우는 것 같지만, 자신의 욕망을 위해 살아가도록 한다. 누구를 위해 공부하게 하고, 일하게 하는 것일까? 교회도 인신 제사를 할 수 있다. 교회를 위해 너무 가혹할 정도로 섬기게 하거나, 교회의 부품처럼 쓰다가 버려지게도 한다. 인신 제사는 이방 가나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탐욕적 인간의 죄성으로 어디에서나 일어났고, 일어나고 있고, 일어날 것이다. 예레미야 19장 1-9절, 성경 하브루타 코칭 1.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가서 토기장이의 옹기를 사고 백성의 어른들과 제사장의 어른 몇 사람과2. 하시드 문 어귀 곁에 있는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로 가서 거기에서 내가 네게 이른 말을 선포하여3. 말하기를 너희 유다 왕들과 예루살렘 주민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이 곳에 재앙을 내릴 것이라 그것을 듣는 모든 자의 귀가 떨리니1)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무엇을 지시하셨는가? (1-2절)- 가서 토기장이의 옹기를 사라고 하셨다(1절). - 그 뒤 백성들의 어른들, 제사장의 어른 몇 사람과 하시드 문 어귀 곁에 있는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로 가서 거기에서 하나님이 예레미야에게 이른 말을 선포하라고 하셨다(2절).2) 예레미야는 유다 백성들의 미움을 받았는데, 어떻게 백성들의 어른들, 제사장의 어른들을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로 데리고 갈 수 있었을까? (2절)- 예레미야를 따르는 백성들의 리더들이 있었을 수 있다.- 반대로, 예레미야를 미워하기에 책 잡으려고, 구경꾼으로 동행했을 수도 있다. Then he was to “take along” some of the elders of the people and “elders of the priests” (i.e., senior priests; a designation also found in 2 Kgs 19:2). They would serve as witnesses to the symbolic act he was about to perform. Considering the low opinion most people had of Jeremiah, it is surprising that they were willing to accompany him. Huey, F. B. (1993). Jeremiah, Lamentations (Vol. 16, p. 186).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3) 하시드 문은 어디에 있었는가? (2절) - 정확히 어디인지 학자들도 알 수 없다고 한다. - 그러나 힌놈 골짜기는 예루살렘 남쪽 아래에 가파른 지역에 있었다. 쓰레기를 소각하는 장소로 쓰였다. 그렇다면 하시드 문 역시 예루살렘 남쪽에 있었을 것으로 본다.Jeremiah was to assemble the elders and priests at the entrance of the Potsherd Gate, a gate otherwise unknown and mentioned only here in the OT. It is sometimes identified with the Dung Gate (Neh 2:13) and may have been the place where potters discarded broken and ruined pottery outside the city wall. However, knowing its exact location is not essential to the interpretation of the symbolic act. Huey, F. B. (1993). Jeremiah, Lamentations (Vol. 16, pp. 186–187).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4) 하나님은 유다 왕들, 예루살렘 주민들에게 들으라고 하시면서, 무엇을 말씀하셨는가? (3절) - 하나님께서 이 곳에 재앙을 내리실 것이라고 하셨다. - 그것을 듣는 모든 자의 귀가 떨리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5) 하나님은 나 자신에게 무엇을 말씀하시길 원하실까? 4. 이는 그들이 나를 버리고 이 곳을 불결하게 하며 이 곳에서 자기와 자기 조상들과 유다 왕들이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며 무죄한 자의 피로 이 곳에 채웠음이며5. 또 그들이 바알을 위하여 산당을 건축하고 자기 아들들을 바알에게 번제로 불살라 드렸나니 이는 내가 명령하거나 말하거나 뜻한 바가 아니니라1)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어떤 짓을 하였는가? (4-5절) - 그 백성들은 하나님을 버렸다. - 그 성소를 불결하게 하였다. - 자기와 자기 조상들과 유다 왕들이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였다. - 무죄한 자의 피로 성소에 채웠다(4절).- 그 백성들이 바알을 위하여 산당을 건축하였다. - 자기 아들들을 바알에게 번제로 불살랐다. - 하나님이 명령하거나 말하거나 뜻한 바가 아니었다(5절). 2) 자기 아들들을 바알에게 번제로 드린 것은 성경 어느 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가? (5절) - 이런 악한 풍습은 이스라엘에서는 처음부터 금지되었다(창 22:1-19 참조). - 이런 인신 제사는 중동지역에 널리 퍼져 있었다. - 특히, 가나안 지역에서 잘 알려져 있었다. - 아하스(왕하 16:3)나 므낫세(왕하 21:6) 당시에 이스라엘에서도 그런 사례가 있었다. - 특히 왕하 23:10에는요시야 당시에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행해졌던 인신 제사가 철폐되는 기사가 언급되어 있다. - 에스겔 8장에는 에스겔이 본 환상이 묘사되고 있다. 이 구절의 내용 중 인간을 제물로 잡아 바치는 제사가 언급된다. 3) 지금 믿는 자들은 교회 안, 선교지에서, 세상에서,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어떤 종교적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은가? 6. 그러므로 보라 다시는 이 곳을 도벳이나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라 부르지 아니하고 오직 죽임의 골짜기라 부르는 날이 이를 것이라 여호와의 말이니라7. 내가 이 곳에서 유다와 예루살렘의 계획을 무너뜨려 그들로 그 대적 앞과 생명을 찾는 자의 손의 칼에 엎드러지게 하고 그 시체를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의 밥이 되게 하며1) 하나님은 도벳,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를 더 이상 그렇게 부르지 말고, 왜 ‘죽임의 골짜기’라 부르라고 하셨는가? (6절) - 이제 곧 그 도벳과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가 죽임의 골짜기가 될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2) 하나님은 유다와 예루살렘의 계획을 무너뜨리고, 어떤 일이 벌어지게 하신다고 하셨는가? (7절) - 그 대적 앞과 생명을 찾는 자의 손의 칼에 엎드러지게 하셨다. - 그 시체를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의 밥이 되게 하셨다. 3) 나 자신의 어떤 계획이 무너지고, 인생에 어떤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는가? 8. 이 성읍으로 놀람과 조롱 거리가 되게 하리니 그 모든 재앙으로 말미암아 지나는 자마다 놀라며 조롱할 것이며9. 그들이 그들의 원수와 그들의 생명을 찾는 자에게 둘러싸여 곤경에 빠질 때에 내가 그들이 그들의 아들의 살, 딸의 살을 먹게 하고 또 각기 친구의 살을 먹게 하리라 하셨다 하고1) 하나님은 성읍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하셨는가? (8절)- 성읍이 놀람과 조롱거리가 되게 하신다고 하셨다. - 그 모은 재앙으로 말미암아 지나는 자마다 놀라며 조롱할 것이라고 하셨다. 2) 하나님은 그 백성들이 원수와 그들의 생명을 찾는 자들에게 둘러싸여 곤경에 빠질 때에 어떻게 행동할 것이라고 하셨는가? (9절) - 그들이 그들의 아들의 살, 딸의 살을 먹게 할 것이라고 하셨다. - 각기 친구의 살을 먹게 할 것이라고 하셨다. 3) 오늘 본문 중 받은 도전 혹 은혜는 무엇인가?
    • 종교
    2021-02-21
  • 하나교회 정영구 목사, '너는 내 아들이라'
    베들레헴과 구유와 아기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시 2:7)생명을 낳고, 생명을 보존하고, 생명의 유업을 받은 자만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9절에서 보면, 그 아들에게 준 생명의 무기가 철장입니다. 철장은 철로 만든 막대기입니다. 그 무기가 그들의 논리와 지식을 깨뜨리고 질그릇같이 부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철장이 무엇입니까?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 말이 불같지 아니하냐. 바위를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니하냐.'(렘 23:29)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 말씀이 생명의 본질이고, 생명의 관계이고, 생명의 섬김입니다. 그것만이 우리가 세상의 논리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주님은 그 본질과 그 생명의 관계와 생명의 섬김으로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주님을 찾고 경배하기 위해서 우리는 두 가지, 지혜를 얻고 교훈을 받아야 한다고 시편 기자는 말씀합니다. 과거의 정보를 모으는 것을 교훈이라고 하고, 그 교훈을 가지고 현재를 사는 것을 명철이라고 하고, 그 명철로 미래를 준비하는 것을 지혜라고 합니다. ‘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재판관들아 너희는 교훈을 받을지어다’(시 2:10)그 아들에게 입 맞추기 위해서 10절의 지혜를 얻어야 합니다. 이 지혜가 지극히 작은 자의 마음으로 재림하실 주님을 준비하고 사는 믿음입니다. 위로 향한 시선을 낮추어야 합니다.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힘들지만 발걸음을 베들레헴으로 향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지극히 작은 자의 믿음입니다. 구유에 누우신 아기예수님을 나의 구주와 나의 주님으로 고백하기 위해서는 몸을 낮추어서 그를 찾아야 하고, 그를 찾으면 그에게 입을 맞추기 위해서 자신의 몸을 숙여야 합니다. 생명의 지식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생명의 지혜로 살 수 있습니다. 지식은 우리를 준비하게 하고, 그렇게 살도록 지혜를 허락하셨습니다.그 아들에게 입 맞추기 위해서 10절의 교훈을 받아야 합니다. 지혜는 얻는 것이고 교훈은 받는 것입니다. 교훈을 받기 위해서는 꾀를 버리고 헛된 일을 멈추어야 합니다. 자연스러워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생명지식은 가장 자연스러운 자만이 교훈으로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자연스러움으로 듣는 귀가 열립니다. 교훈은 듣는 것입니다. 땅의 소리가 아니라 하늘의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세상의 우렁찬 소리가 아니고 미세하지만 생명의 소리, 주의 사자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베들레헴과 구유와 아기가 우리에게 보여준 표적이고, 기쁜 소식입니다. 베들레헴은 가장 작습니다. 하지만 생명의 양식을 주는 떡의 집입니다. 구유는 가장 보잘것없습니다. 하지만 먹을 것을 담는 생명의 공간입니다. 아기는 가장 연약합니다. 하지만 생명의 근원입니다. 오늘 황제의 논리가 우리를 억누르고 우리를 좌지우지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도 그 안에서 지혜를 얻고 교훈을 받아서 살아내는 모두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리스도 주시니라눅 2:1~14, 시 2:10~12
    • 종교
    2021-02-20
  • 하나교회 정영구 목사, '그리스도 주시니라
    현존하는 진리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오늘 말씀의 주제가 11절 ‘그리스도 주시니라’입니다. 우리에게 세상을 구하는 구세주와 세상의 주인인 주님이 누구입니까? 세상의 황제의 논리를 뚫고 하늘의 영원한 생명의 진리로 산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아기 예수님으로 세상을 이깁니다. 그것이 복음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죄악과 불의와 악을 내려놓고 아기예수님을 경배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구원자이고 하나님이신 것’을 어떻게 알아볼 수 있습니까? 표적입니다. 천사가 알려준 표적은 ‘베들레헴’과 ‘구유’와 ‘아기’입니다. 베들레헴은 아브라함과 다윗으로부터의 약속의 성취이고, 구유는 생명의 양식으로 내어주는 하나님의 말씀이고, 아기는 하나님아버지와의 관계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황제의 논리, 현존하는 진리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서 구유에 누우신 아기 예수님을 찾아가 경배하는 일입니다. 오늘 그 경배의 모습을 예언한 말씀이 시편 2편 12절 말씀입니다.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입니다. 입맞추는 자들이 누구입니까? 군왕들이고 재판관들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1절에서 부터 보면, 이방나라들과 민족들이 주님의 정신에 분노하고 헛된 일을 꾸밉니다. 세상의 군왕들과 관원들이 기름부음 받은 자를 대적합니다. 세상의 논리가 하나님의 생명의 지식을 부수려고 합니다. 이들은 세상의 무리들입니다. 하나가 아니고 집단이고, 모임이고, 군중입니다. 이들은 스스로 이 세상을 움직이고 있다고 믿습니다. 세상을 움직이고, 세상의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하나님의 생명진리를 무시하고 잘 살아갑니다. 이들이 승리한 것처럼 권력을 가지고 휘두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하늘에서 그들을 보고 웃고 계십니다. 비웃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그것으로는 하나님의 나라를 침범할 수 없고 하나님나라를 이길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한 사람, 기름 부음 받은 자,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믿는 자만이 그 모든 것을 이길 수 있습니다.그리스도 주시니라눅 2:1~14, 시 2:10~12
    • 종교
    2021-02-19
  • 감리교신학대학교 신약학 김충연 교수, '살아있는 믿음은 배우는 믿음이다.'
    욘1:1; 빌3:7.10 (믿음의 훈련을 위한 특별한 과정: 요나서 1장)제목: 살아있는 믿음은 배우는 믿음이다. 아마도 우리는 오늘 성경을 펴면서 다음과 같이 생각할 것입니다: “요나? – 나는 어려서부터 그의 이야기를 알고 있어! 무엇을 위해 내가 다시 그의 책을 읽어야하지? 더 중요한 성경의 본문들이 없을까?” 우리는 종종 우리가 친숙한 성경본문들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슷한 경우가 바로 요나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 이스라엘에 대해 어떻게 행하셨는지 그리고 다른 민족들에게 어떻게 대하셨는지 잘 알고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결국 요나는 하나님의 예언자였습니다. 그럼에도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해 배우는 것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은 자신이 인간의 사고 패턴과 규격화된 개념에 갇혀있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바울이 부활하신 주 예수를 처음 만났을 때, 자신의 가장 중요한 질문을 그에게 드립니다: “주님, 당신은 누구십니까?”(행9:5a). 후에 그는 감옥에서 빌립보 교회에 있는 성도들에게 자신의 소원을 작성하여 보냅니다: “네, 나는 그리스도를 더 잘 알고 싶습니다”(빌3:10a) 요나는 하나님의 넓은 사랑에 대하여 자신이 갖고 있는 “지식의 한계”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를 깨닫게 하기 위해 그에게 자신을 드러내 주셨습니다. 요나에게는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은 신앙훈련의 과정을 모두 마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것들은 책상에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이 아닙니다. 우리 “힘든” 일상의 한 가운데는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경험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요나서는 그것을 위한 아주 좋은 교본입니다. 요나서는 다른 예언서들과는 달리 이스라엘이나 세계를 위한 메시지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오히려 요나 개인에 대한 하나님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나의 일상인 경험들은 그 속에서 내가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더 잘 알아간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 각자는 큰 기대를 갖고 오늘부터 그의 “신앙훈련의 과정”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 독일어 본문에 대한 권리는 Diakonissen Mutterhaus Aidlingen에 있습니다.
    • 종교
    2021-02-19
  • 감리교신학대학교 신약학 김충연 교수, '미래를 가진 기도자'
    눅18:6-8제목: 미래를 가진 기도자예수님은 그에 제자들에게 비유를 설명하시고, 하나님은 “기도를 들으시는 분”임을 말씀하십니다(시65:2a). 그는 두 가지 약속을 그들에게 주십니다: ●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의 원한을 풀어주십니다”(눅18:7a). 핍박의 끔찍한 상황 속에 있는 성도들의 긴급한 기도들은 어떤 어려움에도 멈추지 않습니다(마10:22; 요15:18-20). “하나님께서 행하신다! 그리고 너희들을 위하여! 눅18:7의 말씀을 문자대로 옮기면, 하나님은 그의 택하신 자들(기도하는 성도들)에게 권리를 찾아주신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것은 포괄적인 의미에서의 권리입니다. 그것은 예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실 마지막 때에 일어날 것입니다.”( G. Maier).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롬8:33.34).● 하나님은 “지체 없이” 행동하실 것입니다(눅18:8a). 다시 한 번 의로운 재판관과 불의한 재판관의 차이가 구별됩니다. 불의한 재판관은 간청하는 과부를 오랫동안 방치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에게서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은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8절). 그러나 이러한 말씀은 우리의 기도경험과 모순되지 않습니까? 우리는 이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너무 오래 기다리도록 요구하신다고 생각하신 적 없으십니까? 우리는 종종 하나님의 관점에서 시간의 길이를 측정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비교. 벧후3:8; 사60:22b). 주님은 가장 적합한 시간에 개입하시고 ‘지체없이’ 오십니다(계22:7을 읽으세요). 그 마지막 질문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은 우리 일상의 현실을 표현합니다. 그만큼 불의와 응답되지 않은 기도의 경험들은 우리의 신앙을 시험에 들게 만듭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다음의 말씀을 통해 격려를 받게 됩니다: “너희 믿음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히10:35)* 독일어 본문에 대한 권리는 Diakonissen Mutterhaus Aidlingen에 있습니다.
    • 종교
    2021-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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